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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어르신들을 잃는 슬픔

2023년 10월 20일(금) 14:21 [(주)온양신문사]

 

기댈 언덕, 바라볼 산, 존경할 어르신…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 온양신문

고향인 온양에 돌아와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공식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4년 만인 1995년부터였다.

온양고나 온양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일과 함께, 고향이다 보니 향토사(지역사) 공부, 답사 모임 우리누리 활동, 풍물패 어금뫼 활동, YMCA 활동, 축제 추진위원 활동 등을 하며 열심히는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여러 어르신을 뵈었다.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뵐 때마다 천선생이라 부르시며 반갑게 맞아 주시고 편하게 대해 주셨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인데도 언제나 따뜻한 눈길과 좋은 말씀으로 보듬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나, 그저 그날그날 눈앞의 일만 간신히 겨우겨우 해내는 사람이다 보니 이때껏 어르신들의 기대에 못 미치며 지내왔다.

그분들을 떠올리면 늘 감사함, 존경스러움, 부러움, 부끄러움, 안타까움, 죄송함 등의 마음이 든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시기도 하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산으로 계시고, 때로는 고고한 소나무나 품 넓은 둥구나무로 계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에 존경할 만한 큰 어른이 없다고 걱정들을 하는데, 나는 지역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故 리한구 본지 대표이사, 故 홍병선 본지 고문

ⓒ 온양신문

지역 언론 원로로서 온양신문의 대표를 지내셨던 고 리한구 선생님은 아들처럼 대하며 아껴주셨다.

사적으로는 어머님 친구의 동생이시고 외삼촌의 친구이셨다. 친구 리인철의 아버님이시기도 하다. 언론인으로 활동해 오셨지만, 특히 천도교 지도자로서 천도교 구파의 정통을 이어 오신 올곧고 굳건한 분이셨다. 선장면 군덕 교차로의 ‘기미독립·무인멸왜운동기념탑’ 건립을 주도하셨다.

20여 년 전에 리한구 선생님을 모시고 예산 오가면의 임성중학교 이상재 교장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 이전부터 두 분은 홍성에 있는 ‘홍성구백의총(현재는 홍성의사총)’은 1906년 홍주의병 당시 의병들의 무덤이 아니고 1894년 내포 동학농민혁명 당시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동학농민군들의 유해가 묻힌 무덤임을 밝히고자 노력해 오셨다.

내가 그 일에 일정한 역할을 맡아 주길 기대하셨는데 능력이 부족하여 뜻에 따르지 못했다. 그래도 나를 한결같이 보듬어 주셨던 분인데 지난해 봄에 세상을 떠나셨다.

김백선 교장 선생님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한학에 조예가 있으셔서 『아산군지』, 『온양시지』, 『영인면향토지』 등 편찬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셨다. 특히 『온궁육백년』은 온양행궁 관련 기본자료로 지금도 소중하게 활용하고 있다.

새까만 후배를 언제나 존중해 주셨다. 정년퇴임을 하신 뒤 이제 제대로 모시면서 배우고자 했는데 불과 몇 년 만인 2002년에 지병으로 타계하셨다. 배우고 여쭐 어르신을 갑자기 잃게 되어 충격이 컸고, 이후 오랫동안 나는 외로움을 느끼며 지내야 했다.

홍병선 선생님은 시인으로 활동하시면서 문인협회와 예총 아산시지부가 틀을 잡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셨고 지역 문화예술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다. 리한구 선생님과 신홍철 국장이 이끌던 온양신문을 응원하시기도 했는데, 나는 온양신문을 통해 뵙게 되었다.

향토사 공부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함께 하겠노라며 이런저런 일을 할 때 그걸 눈여겨보시고 예뻐해 주시면서 손을 잡아 주셨다. 늘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고 때로는 필요한 일이나 방향을 일러주시기도 하셨다.

우리 지역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사랑이 많으셨던 분이다. 뵐 때마다 배우고 몇 차례 모시고 다니면서 배우기도 했지만, 뜻을 받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는데 뜻밖에도 6년 전에 일찍 곁을 떠나셨다. 내게는 매우 소중했던 언덕이 또 사라졌다.

이병윤 선생님은 온천초등학교 담장 옆 포장마차 골목 끝쯤에서 민속만물사를 운영해 오셨다. 당진 신평 분이신데 오래전 온양에 자리 잡고 지내셨다. 일찍이 걸립패에 들어가 온양 일대에서 활동하셨고 후배였던 사물놀이패 상쇠 이광수가 온양에 살았던 어린 시절을 지켜보시기도 했다.

내가 온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첫해에 사물놀이패 어금뫼를 만들어 학생과 시민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던 중에 뵙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앉은 반 사물놀이에서 벗어나 선 반 풍물 판굿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기꺼이 상쇠를 맡아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시고 풍물패를 이끌어 주셨다. 나중에 각 읍면동에도 풍물패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지역 풍물패의 상쇠로서 애써주셨다.

1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언제나 깍듯이 대해 주셨고 단 한 번도 나를 불편하게 하신 적이 없었다. 돌아가신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분이다. 민속만물사는 용화동 숫골로 옮겨 아들이 잇고 있다.

이준세 어르신은 외암 이간 선생의 9대 종손이신데, 백수를 넘기셔서 올해 101세이시다. 마을의 일을 포함해서 지역의 어떤 일에도 일절 나서시지 않는 분이시다.

그 어르신도 나를 아시기는 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존경하는 분이시다. 여러 차례 뵈었는데 뵐 때마다 모자를 벗으시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신다. 옅은 미소와 인사 외에 한두 마디 좋은 말씀이 전부다. 말씀을 많이 하시지 않는다.

늘 삼가고 조심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임을 알기에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도 외암마을 위쪽에 있는 댁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말까지 오신 뒤 버스를 타고 온양온천역 앞에 내리셔서 문화원 서쪽 노인복지회관에 들러 바둑을 두시고 댁으로 가셨다.

아는 분은 잘 아는 그 분의 일과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시다가 길에서 뵈면 자전거에서 내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해주시곤 하셨다. 몇 해 전부터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가신다. 아산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곧으신 분이라 생각한다.

이흥복 어르신은 이준세 어르신과 함께 가장 곧은 분이고 또한 아주 고운 분이시다. 내가 매우 존경하는 어르신 중 한 분이시다. 아마 지역사회의 다른 분들로부터도 원로로서 가장 존경받는 분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뵈어 온 분인데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시고 천선생이라 부르며 어린 나를 보듬고 배려해 주셨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옛이야기를 하시고 아시는 형님들 안부를 물으시곤 하셨다.

당신을 내세우는 일이 한 번도 없으셨고, 궁금한 일을 여쭈면 찬찬히 일러주셨다.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지켜봐 주시면서 틈틈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 이흥복 어르신이 지난 9월의 어느 야외 행사 때 오래 서서 계시다가 쓰러지실 뻔하셨다고 전해 들어서 몹시 화가 나고 안타까웠는데, 며칠 전에는 갑자기 건강이 아주 나빠져서 병문안도 안 될 만큼 위중해지셨다고 들어 요즘 매우 슬프다. 진심으로 쾌유를 기원하면서도 이제 거의 마지막 분일 듯한 지역의 큰 어르신을 또 잃게 될 것 같아 정말 슬프고 두렵다.

기댈 언덕, 바라볼 산, 존경할 어르신을 잃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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