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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도고산 이야기

2024년 06월 10일(월) 10:21 [(주)온양신문사]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 (주)온양신문사

도고산 정상, 국사봉 꼭대기에 중요한 역사 유적이 있다. 자연석을 2단으로 쌓은, 아주 오래된 대규모 석축 유적이다.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위성지도에서도 윤곽을 볼 수 있다. 대략 동서 방향으로 길며, 하단은 가로 14m에 세로 11m, 상단은 가로 9m에 세로 7m 정도다.

어떤 유적일까. 일단 고려시대의 제사 유적으로 본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중에 국가 차원에서 명산과 대천에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도고산도 그중 한 곳이었다.

몇 해 전 아산의 3.1만세운동을 조사할 때 도고산 정상에서 나뭇가지 등을 모아 놓고 불을 피우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봉화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는 증언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때 함께 들었던 이야기가 도고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고산 안내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봉수는 근대 이전 시기, 즉 고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군사적 목적에서 설치 운영했던 국가의 기간 통신망이었다.

ⓒ (주)온양신문사

ⓒ (주)온양신문사


도고산에 실제로 봉수대가 있었을까. 그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위치로 봤을 때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직봉(중심 봉수 노선)이든 간봉(보조 봉수 노선)이든 지금까지 확인된 봉수 노선에 포함되지 않고, 다른 어느 봉수대와 연계되는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관련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국가의 주요 시설인데 어느 곳에서도 기록을 볼 수 없다. 유일하게 ‘기록’이 확인되는 자료는 민망하게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9년 3월 말에 발행한 1/5만 지형도다. 도고산에 ‘烽燧臺址(봉수대지)’라 기록되어 있다. 1914~16년에 준비한 지도라 도고산 봉화 시위의 결과는 아니다. 속설에 바탕을 둔 것인지 어떤 자료를 확인한 것인지,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봉수대는 100%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자료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제사 유적이라는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의 ‘신창현’ 조 끝에는 특이하게도 “도고산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련된 내용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충청도의 명산으로 공주 계룡산, 단양 죽령, 덕산 가야산, 청풍 월악과 함께 신창 도고산이 기록되어 있다.

모두 사전(祀典), 즉 국가의 제사 관련 규정에 포함되어 있던 산이었고, 도고산의 경우 “사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혁파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도고산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명산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조선 초에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중요한 산이었기 때문에 『고려사』에 도고산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고산은 충청도 전체는 물론이고 아산시 지역에서 높이나 영역으로 두드러지는 산이 아니다. 높이(481.8m)로는 아산에서 광덕산 등에 이어 네 번째일 뿐이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생김새로는 설화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왜 도고산이었을까.

ⓒ (주)온양신문사

도고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전망이 참 좋다. 특히 북쪽으로 아산만 안쪽, 곡교천 하류와 삽교천 하류 일대가 널리 잘 조망된다. 누구라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사실, 아산만을 기준으로 하면 영인산이 더 중요하다. 다른 이유로 얼핏 떠오르는 일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아산만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무한천 뱃길의 군사적 중요성이다. 대략 100년 전 기준으로 선장포를 거쳐 예산 신례원 앞까지 기선이 드나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천500여 년 전에는 토사의 퇴적이 덜 되어 바닷물이 훨씬 더 상류까지 오르내렸다고 보고, 중선 정도의 배는 지금의 예산읍 서쪽은 물론 멀리는 예당저수지 근처까지 드나들었다고 추정된다.

백제 후기, 즉 공주와 부여에 도읍이 있을 때 금강 다음으로 아산만을 거쳐 무한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이 중요했다고 보고 있다. 그 들머리 길목에 자리한 도고산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음이 분명하다. 고려 때 도고산이 국가에서 제사하는 충청도 명산 중 하나로 선정 근거가 무엇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백제 이래로 중요했던 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도고산 정상의 석축 유적이 제사 유적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마음에 걸리는 일 중 하나가 기와 조각이다. 제사 유적에 기와지붕의 건물을 세웠을까 하는 점도 확인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봉수대보다는 제사 유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몇 년 전에 아산시 관계 부서에 정확한 사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요청했었다. 도고산 유적을 조사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진행되지 않았다.

아산시에서 요즘 아산시 경계선을 기준으로 ‘300리 둘레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도고산도 예산과 경계여서 분명히 포함되는데 설명 자료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있지도 않은 어금니 바위에서 아산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아직도 많은 사람 사이에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어서 아주 속상하다.

이처럼 누군가에 의해 한 번 잘못 알려지면 바로잡는 데에 시간과 공이 참 많이 들어간다. 가능하면 빨리 전문가의 조사 연구를 통해 도고산 유적이 과연 어떤 유적인지 확실하게 밝혀져서 아산시 관련 자료들이 모두 정확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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