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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인간이 아니면 의착할 곳이 없고 인간은 신(神)의 가르침을 무형(無形)에 효용(效用)하면 교(敎)가 되고 신(神)의 가르침을 유형(有形)에 효용하면 정(政)이 된다. 그래서 신(神)과 인(人)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교(敎)와 정(政)도 둘이 아니라 하나다. 수천년동안 기성의 가치관은 신과 인을 분리(分離)시키고 교와 정(政)도 분리(分離)했다. 모든 종교는 도덕을 숭상하고 도덕을 배우고 도덕을 실천하는 도덕의 무리일 뿐 정치잡배나 시중잡배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고유사상이요 문화였다. 그러나 서구사상에 매혹된 일부 지각없는 무리들은 정권적(政權的) 차원에서 활동 또는 활용하고자 하고 있으니 종교의 본의(本意)가 아닐 것이다. 또한 종교의 신자가 많으면 자의건 타의건 자연히 자신도 모르게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자기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곧 자기의 정신이다. 정치 이념과 실천요강에 관한 뜻은 교(敎)에서 우러나고 발원되는 것이며 교가 원류(源流)라 하겠다. 그래서 교와 정을 나누면 둘이지만 나눌 수 없는 하나다. 그렇지만 정(政)보다 교(敎)를 우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神)은 초인간적(超人間的), 초자연적(超自然的) 힘에 대해 인간들이 경외(敬畏)와 존숭(尊崇)으로 신앙(信仰)하는 총체적(總體的) 체계화를 종교라고 한다. 각 종교의 문호(門戶)는 다지(多枝), 다변화(多邊化)하고 각기 종문의 의식(儀式) 행사 또한 다르다. 종지(宗旨)와 목적은 악(惡)이 아니라 선(善)으로 대동소이(大同小異)하고 내세관(來世觀), 즉 사후관이 있는 종교와 사후관을 무시하는 종교 즉 현실적, 과학적 실태만을 신뢰(信賴)하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종교가 있다. 자기 종교가 아니라고 타 종교신자를 흉보는 사람은 참교인이 아니다. 종교 지도자나 목사들이 유창한 화술로 대중에게 설교를 하고 큼직한 성경책에 자상하게 좋은 말만 하고 있어도 대중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이요, 우이독경(牛耳讀經)격이다. 현실 사람들은 착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으니 아마도 종교의 운(運)이 거의 끝난 것 같다. 변사(辯士)처럼 말 잘하고 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명인의 하수인일 뿐 그 사람 자신이 명인은 아니다. 거력(去力)과 흡력(吸力)이 상응(相應)하듯 올 래(來)자를 알면 갈 거(去)자도 알아야 하는데 지각없는 사람은 전혀 갈 거자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려야 하는 일부 교역자와 신자들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욕구충달(慾求充達)에만 광분(狂奔)하는 듯하니 말이다. 신(神)과 인(人)을 분리(分離)하는 기성가치관을 타파하지 못하고 즉 선천(先天) 잔재(殘滓)를 해탈(解脫)하지 못하고 신(神) 인(人) 등식(等式)의 새 가치관(價値觀)인 후천운(後天運)을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시천(人是天)이요, 인언(人言)이 천언(天言)이란 옛 성인의 말씀이 허언(虛言)이 아니다. 옛 사람들은 언행(言行)이 일치(一致)했다. 그래서 문서로 약정없이 말로만 약속해도 조금도 어김없이 이행했다고 한다. 그것이 옛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용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 인심은 서로가 불신하여 문서로 이것저것 따저서 약정을 한다. 그래도 미진(未盡)한 점이 있어 시시(是是)비비(非非)가 분분하여 불안의 연속이다. 왜 이러할까? 불교신자와 기독교 신자를 합하면 우리나라 인구 전체의 80~90%라고 과장하여 말들을 하는데 진짜로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참된 스승도 없다. 그래서 천지(天地) 공도(公道)의 참뜻에 따라 행하는 자기 마음을 스승삼아 즉 이심위사(以心爲師)하는 길(道) 밖에 없다. 세상사가 여기저기 할 것 없이 가짜 세상이 된 듯하다. 그래서 모두가 가짜가 판을 치고있는 세상이며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심위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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