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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완의 [행복한아산만들기]

만남에 관하여

2024년 06월 02일(일) 13:19 [(주)온양신문사]

 

↑↑ 맹주완(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부소장

ⓒ (주)온양신문사

“아무리 푹푹 쪄도 더위를 타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떨지 않았으며, 쌩쌩 몰아치는 바람도 그보다 더 매섭지 않았고, 후두두 쏟아지는 장대비도 그보다는 덜 매몰찼다.” C. 디킨스(1812~1870)가 창조한 구두쇠의 대명사 스크루지 영감의 모습이다.

유럽여행을 몹시 하고 싶었던 F.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1862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80여 일간 여행을 한다. 그는 여행 중에 런던에서 디킨스와 만났고, “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선량한 사람은 내가 지향하는 인물이고 악한 자는 나의 과거 모습이거나 나에게서 발견한 유형이”라는 말을 디킨스로부터 들었다고 편지했다.

다만 확인해보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여행은 사실이었지만 디킨스와의 만남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느 노년에 접어든 역사학자가 주목을 받기위해 창작한 이야기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빈곤,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디킨스를 존경했고 만남을 고대했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바이마르는 빛나는 문화도시이다. 18세기 후반 바이마르공국에 C. M. 빌란트(1733~1813), J. G. 헤르더(1744-1803), J. W. 괴테(1749~1832), F. 쉴러(1759~1805) 등 지성인들이 모여들었다.

빌란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공국의 왕자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초빙되었다.

헤르더는 의학과 신학을 전공하였고 철학과 문학에까지 능해 공국의 초대를 받았다. 그는 한 민족의 문학적 영감의 근원은 민중의 영혼에 다름 아니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민족들의 시문학을 세계문학에 포함시켰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명성을 얻었던 터라 공화국의 고위직 공무원으로 채용되었다.

쉴러는 일찍이 예나에서 괴테와 만나 친해지면서 독일 고전주의를 태동시켰고,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와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네 사람은 매주 한자리에 모여 시를 지어 낭독하고 국제정세를 논하고 음악을 들으며 여러 해 만남의 시간을 이어갔다. 이 때부터 바이마르는 문화의 전성기를 누렸다.

R. 바그너(1813~1883)는 독일 오페라의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하였다. 바그너를 움직인 것은 A. 쇼펜하우어(1788~1860)였다. 쇼펜하우어는 창작예술이라는 분야와는 무관했지만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에게 마음을 열게 된 동기는 정치적인 이유였다. 1849년 시민혁명에서 선봉에 섰다가 궁지에 몰린 바그너는 정치적 상황에 환멸을 느꼈다.

그 시점에서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정치를 포함한 모든 사건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면서 음악을 인간의 가장 고귀한 활동으로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글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충동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던 바그너에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주었다. 혁명가이자 예술가로서 바그너는 자신이 이제까지 음악이나 연극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계시를 쇼펜하우어에게서 얻게 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주제로 한 음악극 창작에 몰두하였다. 주옥같은 바그너의 오페라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와의 만남 속에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 <좌>맹씨행단 구괴정 가는 길, <우>구괴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 (주)온양신문사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亶) 고택 외곽의 담장 밖에는 구괴정(九槐亭)이 있다. 황희(1363~1452)는 1431년에 영의정에 올랐고 다소 보수적이었지만 문제해결력과 정무감각이 뛰어났다. 권진(1357~1435)은 1431년에 우의정에 올랐고 몸가짐이 맑고 검소하였으며 청렴한 관리였다. 소를 타고 다닐 정도로 성격이 소탈했고 졸직(拙直)한 성품의 70대 맹사성(1360~1438)은 좌의정에 있으면서 세종에게 퇴직을 소원하고 있었다.

어느 날인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세 정승이 아산(온양)에서 만나 구괴정에서 시문을 짓고 국정을 논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구괴정이란 이름은 세 정승이 만난 기념으로 각기 세 그루씩 느티나무를 심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고도 먼 한양을 떠나 특별한 만남의 상징이 된 느티나무들은 6월을 짙은 초록으로 물들이며 활력을 더하고 있다. 만남이 가져온 결실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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