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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은 우리 고장 출신 진수린 독립투사가 서거한지 78주년이 되는 날로서, 염치읍 강청리 산31번지 투사의 묘역에서 투사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가 치러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을 기억하고 투사의 빛난 정신을 다시 생각한 이가 몇이나 될까. 투사는 전형적인 아산사람이었다. 투사는 고종35년(1898년) 신창면 신달리에서 출생해 신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아산군 금융조합에서 근무하다가 평소 절친한 사촌남매간인 독립운동가 최익수의 활동에 감화됐다. 24세 되던 해(1921년) 근무중이던 금융조합의 공금을 빼내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가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헌납한 뒤 1927년 재산계 서기, 한인독립청년회 대표, 조선독립운동 비밀결사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8년 임시정부에서 부여한 모종의 임무를 띠고 귀국해 본적지인 신창면에서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된 후 이듬해 7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2년형을 언도받아 공주형무소에서 복역중 1930년 8월 병을 얻어 위독하자 가출옥되었으나 불과 한 달만인 9월 10일 순국했다. 불과 32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후 투사의 공적은 완전히 잊혀졌다. 직계 후손이 없어 조카들이 성묘를 하는 정도였기에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그러다가 지역의 일부 뜻있는 인사들과 남은 후손들이 고인의 공훈을 겨우 찾아내 정부 요로 등에 알린 끝에 지난 1992년에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애국투사로 인정을 받았어도 지역에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해 오로지 해당 지역의 면(지금은 읍) 단위 행사로 추모제가 1년에 한 차례 치러질 뿐이었다. 지난 8월 15일을 전후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다. 광복과 건국, 언뜻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이도 있으나 건국절은 일제 36년간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피에 젖은 독립운동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속내가 저변에 깔려 있는 술책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지난 세월 우리는 이 지역출신의 위대한 독립투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방치해왔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추모제라는 것이 마을 주민과 몇몇의 후손들이 모여 향불 사르는 것으로 그쳤으니 말이다. 그 얼굴 팔기 좋아하는 높은 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고도 유서깊은 이 고장, 발전하는 이 고장을 외부에 자랑할 수 있는가. 지역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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