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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2022년 11월 24일(목) 11:52 [온양신문]

 

영괴대에서 맞이하는 가을

↑↑ ▲홍승균(홍가신기념관 관장)

ⓒ 온양신문

가을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 아산은 가을의 전령사라 할 은행나무의 노랑빛이 눈부신 햇살 아래 하늘과 땅에서 찬란하다.

최근에는 코로나에 의한 통제가 완화된 영향을 더하여,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나들이객들로 인해서 현충사와 은행나무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주말에는 차량이 혼잡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방문객이 폭주하여 무척 혼잡스러운 모습이 펼쳐졌다.

우리 아산의 은행나무길은 이제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조화로운 노랑 은행나무 사이에서 검정 아스팔트를 채색한 오리발 모양의 잎들을 밟으며 많은 이들이 가을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광 아산의 번영이 다시 부활한 듯 자랑스러움이 느껴온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 서운한 감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곡교천 건너 은행나무길에 몰두할 뿐, 관광 아산의 중요한 한 축이라 할 온양온천 시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과거 전국에서 최고의 명승지로 꼽혔던 온양온천은 그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관광지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접하는 온수에 비할 바 없이, 차별화된 온양온천의 어떤 매력이 호소력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필자는 현충사 백암리에 가까운 친척이 있어서 유년 시절부터 이 길을 참 많이 다녔다. 은행나무길은 가로등도 없었고, 대절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밤길에서 차창 밖으로 연이어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 은행나무는 전봇대보다도 얇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전국적인 각광을 받는 명품 가로수길이 된 오늘의 풍광에서 마치 그들을 직접 관리하고 키운 듯 마음 뿌듯하기만 하다.

그러나 은행나무길보다도 유년 시절의 오랜 추억으로 뇌리에 깊이 각인된 곳은 봄에 벚꽃 만발하여 장안의 상춘객이 운집한 서울의 창경원 방문이었다. 당시 서울의 창경원은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었고 각종 놀이기구가 현란하게 유혹하는 놀이공원이었으니, ‘이렇게 재미있는 곳의 옆에 사는 서울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하고 부럽기만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일제 강점기 조선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만행을 저지른 곳이 옛 궁궐 창경원이다. 유리관 번득이는 동양 최대 식물원을 높게 조성하고, 갖가지 소리를 울부짖는 동물들의 우리에서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의 국화인 벚꽃으로 공원을 만들었다.

궁궐 뜰에는 춘당지를 만들어 뱃놀이를 하고, 놀이기구를 설치하여 환호성 그득한 데다 높디높은 관람차를 운영하여 창덕궁과 종묘를 내려다보게 하였다. 1909년에 그렇게 훼손된 창경원은 1984년에서야 옛 흔적을 되살려 창경궁으로 회복되었다.

그럼 창경궁을 대하는 서울시민들의 현재 의식을 들여다보자. 서울에는 조선의 법궁 경복궁이 건재하고, 근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 덕수궁이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관람객을 적절히 통제하여 조금의 훼손조차 방지한 창덕궁이 장엄하니, 이제는 사라진 왕조의 궁궐 하나쯤은 서울시민들의 여가 유흥을 위한 공간으로 할애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을까?

궁궐의 부지가 조각조각 민간에 매각되어, 뒤늦은 복원 과정을 거쳤음에도 궁궐다운 위상을 찾지 못한 경희궁의 현황에서는 또 어떤 생각들을 할까?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 마당은 바로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말라죽어가던 곳이었다. 훗날의 정조 임금인 세손이 ‘할바마마! 부디 아버지를 살려 주시옵소서’ 절규하던 조선사 최대의 비극이 진행된 현장이다. 이후 사도세자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워버린 영조의 조치에 따라 정조는 즉위한 다음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 조성에 정성을 쏟았을 뿐이었다.

↑↑ ▲영괴대 <사진제공=홍승균>

ⓒ 온양신문

바로 정조가 아버지의 사연이 서린 온양행궁에 어필을 내리고, 애절한 그리움을 효행으로 달랜 눈물 어린 문화유산이 바로 온양관광호텔 내 ‘영괴대(靈槐臺)’이다.

↑↑ ▲영괴대비 <사진제공=홍승균>

ⓒ 온양신문

현재 아산은 그 어느 때보다 온양관광호텔 부지에 대한 향후 활용방안 문제가 첨예화되어 있다. 온양행궁의 복원이나 재현의 문제는 참으로 오랜 시간 쟁점화 되어 왔고, 급기야는 온양행궁이 있던 호텔 부지에 초고층 주거단지의 건설이 대두되고 있다.

즉, 더 이상 논쟁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가 도래했음이다. 이는 호텔 부지에 대한 대규모 건축물 허가를 넘어서 온양 도심의 층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사안임은 모두가 인지하는 상황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쟁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온양관광호텔이 사유지라는 점에 있다. 조선왕실과 장구한 온천의 역사가 응축되어있는 온양행궁 공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고, 상업적인 용도로 마음껏 파헤쳐진 데 기인한다.

창경궁을 공원으로 만들면서도 명정전을 파괴하지 않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일본인들이 온양행궁을 숙박업소와 목욕, 유흥의 공간으로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하면서도 영괴대와 신정비를 끝내 망가뜨리지 않고 남겨놓았다. 이는 조선왕을 비웃고 조선의 왕들이 사용하던 공간에서 품격 있는 왕실 체험의 상품화를 노린 만행에 다름 아니다.

유흥이라는 저렴한 이미지로 온양온천을 변질시킨 시작이 바로 일본인의 유산이다. 창경궁의 복원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국가 위상이 더 이상의 피지배 하등 국가가 아님을 온 세상에 천명하는 일이었다. 연이어 조선총독부 건물도 없앴고 광화문도 똑바로 다시 지었다. 다들 박수를 쳤다.

온양행궁은 어떤 곳이었을까? 사도세자 뿐만 아니라 조선의 태조로부터 역대 왕과 왕후가 온양행궁에 체류했던 날짜 기록을 보면 자그마치 415일이나 된다. 일 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온양은 당시 한반도의 수도였고, 모든 행정의 중심이자 통치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창경궁의 복원 의미가 흔한 궁궐 중의 한 곳 정도는 위락단지로 만들거나 비싼 토지에 걸맞은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지 않았듯이, 온양행궁을 복원하는 일은 관광 아산의 부활 추진의 일원이 아니라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새 인식으로 다가서 보자.

역대 왕들의 목욕탕이기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 토막 족적을 그리워했던 정조 임금의 눈물을 우리가 지켜주자! 창경궁 편전 마당에서의 울부짖던 절규가 영괴대에서도 들려오니, 2022년을 살아가는 후손들이 그 현장을 구태여 파헤쳐야 할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세조가 법주사 복천암에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인연 된 정이품송 하나가 보은 속리산의 강력한 랜드마크이듯, 더불어 세조가 온양행궁에 와서 이름을 짓고 친히 세운 ‘신정비’ 또한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소중한 역사의 자취이다.

남들보다 좀 더 높이 솟은 빌딩을 경쟁하는 여러 첨단도시 중의 하나로 아산을 만들어 낸들 후손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문화자산으로 남겨질 것인가?

일제가 망가뜨린 온궁의 역사를 되살리지는 못할망정 대못을 박고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물론 많은 난제가 있고, 개인 소유의 투자자 입장을 막무가내 밀어붙일 수는 없다. 합리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씩 우리 아산의 궁궐을 되살리는 노력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이제 가을이 더 깊어지면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우리 온양온천의 명품 온천수가 주는 따뜻한 이미지가 기라성 같은 빌딩군의 온양온천보다 낫지 않을까?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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