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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행복한 온양온천의 추억

2023년 04월 08일(토) 06:53 [(주)온양신문사]

 

↑↑ ▲홍승균(홍가신기념관 관장)

ⓒ 온양신문

아산에 살면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목욕’이라고 하고 싶다. 필자의 유년시절에 도회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온양 (당시는 아산이 생소하였다)’에서 왔노라고 이야기하면, 갸우뚱 거리는 상대방에게 곧 온양온천을 부연설명해야 했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은 ‘온천에 가보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들에게 ‘온천’이라는 개념은 현재의 테마파크 정도를 연상할 만큼 별도로 조성된 관광지로 생각하고 있었음이다. 갑자기 설명이 길어져 대답이 곤궁했었다. 주말이면 당연하듯 비누곽에 수건을 둘둘 말아 가던 아산의 동네 목욕탕이 그들이 말한 온양온천이었으니 말이다.

아산에 사는 주변의 지인들은 거개가 단골로 다니는 목욕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특정 목욕탕에 편중되지 않고, 제각각 다니는 곳이 다른 데다가 그 목욕탕을 고집하는 나름의 이유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온도가 내게 맞아서, 새 건물이라서 깨끗하니까, 낡고 오랜 시설이라 사람이 없으니까, 호텔사우나의 기분을 만끽하느라, 값이 싸니까, 주차하기 편해서 등.

그런데 필자는 딱히 정해두고 다니는 목욕탕이 없다. 아니 목욕탕 투어를 즐기는 편이다. 숫자 500까지 세고 나오라는 선친의 엄명에 따라 뜨거운 물에 때를 불리면서도 냉탕에서 웃는 아이들을 부럽게 쳐다보며 애처로웠던 목욕탕의 추억. 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아보면 지나온 나날쯤은 수십 년도 쉽사리 돌아갈 수 있다.

ⓒ 온양신문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오래된 그 목욕탕은 샤워기도 제각각이고 수도꼭지도 이어 붙인 데다 고장 난 것도 간혹 눈에 띄지만 바가지 하나조차 정겹기만 하다. 또 새로 개업한 목욕탕은 번쩍번쩍하는 집기와 상대방의 등허리 시꺼먼 점까지도 선명하고 옛 상처뿐만 아니라 동물 문신까지 낱낱하다.

호텔사우나의 경우 가격은 비싸지만 카펫 밟으며 왠지 어깨 으쓱하며 여행객의 하나가 된 듯 호사스러운 느낌을 즐긴다면, 여름마다 새 단장공사하는 중소 목욕탕은 매년 가을에 새 인테리어를 평가하는 맛도 있다.

OO 목욕탕에 가면 엄한 아무개 어르신이 늘 계셔서 어렵고, OO 목욕탕에 가면 나와 결이 맞지 않아 데면데면하던 그가 반드시 있어 시선처리가 어렵다. 또 어느 곳은 늘 고객이 없어 한가하여 여유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누구를 만나든 발가벗은 상태에서 지위고하가 있을 턱이 없으며, 탈의실에서는 천 원짜리 캔 음료 하나만으로도 꽤나 생색을 내며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 옛날 조선의 역대임금들의 목욕법을 우리는 따라 할 필요도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다. 여상궁이 옆에서 오동나무 바가지로 온천수를 수백에서 수천을 머리 위로 퍼붓는 목욕법이 임금의 목욕법이다. 임금처럼 해줄 사람도 없거니와 불평 없는 샤워기가 대신해 주면 그만이고, 늘 그렇듯 뜨거움 속에 허리를 지지는 개운함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한편 베테랑 목욕문화를 지니고 있는 아산사람들은 수도권 전철의 개통에 따라 온양온천역을 통해 노인들이 대량 방문하는 목욕탕에 혀를 차며 불평하기도 한다. 굳이 ‘세신 후 입욕하세요’라고 써 붙여야 할 만큼, 오자마자 첨벙 탕에 들어오는 비매너에 질겁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산사람이 생각한 짜릿한 행복은 신새벽 새물에서 몸을 담그는 것이고, 충분히 개운함을 느낀 후 수도권에서 기대를 담고 찾아오는 목욕손님을 묘한 승리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서울에서부터 묵은 때를 안고 열심히 오셔도 된다.

우리는 이미 새벽에 새물을 만끽한다. 실로 아산시민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남성들은 입욕 비용이 아까울 만큼 그저 머리 감으러 가는 용도로 내 집 욕실처럼 손쉽게 가는 경우가 많다면, 여성들은 예전처럼 빨래를 가득 지참해 가거나 아이들을 주렁주렁 동반하지 않더라도 매우 알뜰하게 본전을 회수한다.

어느 목욕업자의 전언에 따르면 입장으로부터 최장 9시간 동안 탕에서 머무른 고객도 있다고 하니, 목욕탕 주인의 속은 열탕에 버금가리라.

한편 목욕탕에서 빌려주는 수건은 아무리 통제하여 나누어 주더라도 여탕은 매번 손실이 발행하는 반면, 남탕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쌓아놓지만 저녁이면 한두 장이 남는다고 한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 집에서 가져온 수건을 깜빡하여 놓고 가기 때문이란다.

수건의 손실에 따른 목욕탕 측의 고충으로 특정 목욕탕은 급기야 수건에 ‘OO탕’이라는 문구 대신 ‘훔쳐온 수건’이라고 새겨 놓았다. 몰래 가정으로 가져간들 자녀가 보기에 민망한 상황을 만들어 놓으니 웃음을 자아낸다.

각 목욕탕마다 만날 수 있는 터줏대감들!
발가벗은 채로 할 말이 많은지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 아예 안방처럼 대자로 누워 자는 사람, 온갖 메이크업에 집중하는 사람, 노모를 위해 매일 온수를 떠가는 효자 아산의 목욕탕을 두루 가노라면 목욕탕마다 개성 있는 모습이 자못 즐겁고, 껄껄껄 적나라한 서로를 반기며 정경이 사람 사는 냄새가 자욱하다.

탕실에 들어가서 고개를 젖히면서 아산 사는 맛을 즐긴다.
‘아~ 좋다’

새똥을 맞듯 천정에서 식은 물방울이 그 넓은 탕에서도 유독 내 코에 떨어지며 정신이 번쩍 난다. 찬 방울이 깨워주니 이제 그만 가야 할 시간인가?
아산에 사는 즐거움!
바로 목욕탕 투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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