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0-23 오후 02:50:57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기고/칼럼 > 행복한아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2022년 09월 08일(목) 14:40 [(주)온양신문사]

 

온양행궁 영괴대 느티나무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회장)

ⓒ 온양신문

나무가 좋다. 소나무, 느티나무는 물론이다. 이런저런 나무 모두 좋아한다.

나무와 친해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어릴 적 집 주변과 과수원에 다양한 나무들이 꽤 많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큰 나무들 사이에 얽힌 등나무 줄기를 타고 타잔놀이도 하고 길게 늘어진 개나리 숲 아래에 짚을 깔아서 아지트 같은 비밀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전나무 가지에 눈이 쌓여 늘어진 모습은 일품이었다. 어지간한 과일나무 종류는 다 있었다.

일상에서 쓰는 부지깽이, 빗자루, 지게와 작대기, 눈 치우는 넉가래, 재 긁어내는 고무래, 절구와 공이, 논 써는 써레, 소여물 푸는 바가지와 구수, 잠박(누에 채반), 함지박, 도마, 뒤주, 밥상, 책상, 걸상, 곡식 되는 되와 말 등은 모두 나무로 만든 것들이다.

쟁기도 날을 제외하면 모두 나무였고 거의 모든 연장 자루는 나무다. 연장 자루 해 박는 일도 꽤 잦았다. 자치기의 자, 팽이, 칼, 활과 화살, 새탑새기, 새총, 썰매와 송곳 등 당시 놀잇감의 재료 중 상당수가 나무였고 모두 직접 깎거나 다듬어서 만들어 썼으니 산 나무든 죽은 나무든 나무와 친해지고 나무의 성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산홍 처음 나왔을 때 얼른 사다 심었고, 부럽고 갖고 싶어서 대나무와 느티나무들을 일부러 구해서 심었다.

30대 때에는 한동안 분재에 관심이 생겼다. 아마도 고향 집을 떠나 객지에 살면서 가까이에 나무를 두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산에서 나무를 캐다 심은 적은 없었는데도 많을 때는 화분이 100개 가까이 되었다. 물론 재주와 돈이 없으니 멋진 분재는 사진이나 전문가의 작품, 분재원 등에서 봤고 내 것들은 그저 화분에 나무를 심고 약간 다듬은 정도였다. 아파트에 잠시 살았던 적도 있었고, 그때도 나무 화분은 꽤 있었으나, 대개는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 사는 집 주변에도 어떤 사람이 ‘쓸데없는 나무들’이라고 하는 수십 종의 나무들을 욕심껏 많이 심었다. 전원주택도 아니고 정원수 개념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숲처럼 나무들이 우거지게 만들고 싶었다. 오가는 길도 좁고 나뭇가지를 피하며 다녀야 하니 나무에 치어 사는 것도 같다. 어찌 보면 나무가 주인처럼 여겨진다.

어찌어찌 생긴 ‘스틱’이 몇 개 있어도 왠지 불편해서 어쩌다 산에라도 갈 때는 여러 개의 나무 지팡이 중에서 짚이는 대로 들고 간다. 욕심이 많아서 지팡이도 여러 개 만들었다. 전에는 산에서 소나무나 때죽나무 간벌된 줄기를 갖다가 쓰거나, 집에서 가지치기한 산수유나무 등으로 만들기도 했다. 근래에는 죽은 노간주나무나 죽은 대나무를 다듬어서 만들었다. 어제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무가 좋다.

서론이 길어졌다. 나무를 무척 좋아하고 나무를 조금은 안다는 얘기다. 본론과 결론은 짧게 하자.

↑↑ ▲온양관광호텔 구내에 있는 영괴대

ⓒ 온양신문

요즘 영괴대에 대해 좀 알아보려다 보니 자주 떠올리는 나무가 느티나무다. 정확히는 온양행궁 터, 온양관광호텔에 있는 느티나무다.

그런데 엊그제 어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본 다음 카페의 글 때문에 또 그 나무를 생각하게 됐다. 상당한 전문가라 여겨지는 그분도 영괴대 관련 글을 썼는데 1760년 당시 김상로 등 삼정승이 자신의 보호막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사도세자(장헌세자)가 영괴대 자리에 나무 세 그루를 심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좀 아득해지고 화가 나기도 했다. 중국에서 일찍이 삼공을 삼괴(三槐), 괴정(槐鼎)이라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삼정승 자리를 괴위(槐位)라 했으니, 전문가적 식견이 엿보이는 새로운 해석이기는 하나 영괴대(靈槐臺)에 있는 나무가 회화나무(홰나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홰나무가 아니면 그 해석은 엉뚱한 얘기가 된다.

한자 ‘槐(괴)’는 ‘홰나무 괴’라고 한다. 모든 옥편, 자전에 그러하다. 그러니 여러 글에서 영괴대의 나무를 홰나무라고 풀이할 수도 있으리라 이해는 된다.

각종 논문,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사이트의 관련 내용 국역도 모두 홰나무라고 되어 있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 한자를 글자 그대로 일반적으로 풀어서 비롯된 일들이다.

문제는 영괴대에 있었고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는 나무는 홰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였다는 사실이다. 또, 느티나무도 한자로 흔히 괴(槐) 또는 괴목(槐木)이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1920년대 조선총독부 문서에는 영괴대의 나무를 영괴대비와 함께 보존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1937년의 신정관 홍보 자료에는 여러 그루가 상당히 묵은 ‘노수(老樹)’라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온궁이 강탈당한 1904년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느티나무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정조 20년(1796)에 편찬된 『온궁사실』에 기록된 ‘영괴대기’ 등 여러 내용에 따르면 1760년(영조 36)에 사도세자가 온궁에서 머물 때 활쏘기를 하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 나무 세 그루를 심도록 했다.

35년 뒤인 정조 19년(1795)에 그곳을 정비하고 대를 조성했는데 다른 종류 나무를 새로 심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정조 재임 중에는 바뀌었을 리가 없으니 1800년에 정조가 승하한 뒤부터 1904년까지 104년 사이에 다른 나무로 바꿔 심었을까?

만약 1760년에 홰나무를 심었다면 1800년 이후 언젠가 어떤 사유로든 느티나무로 바꿔 심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아무리 왕조 말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감히? 1937년에 ‘노수’라 할 정도면 적어도 1800년대 중반 이전의 일이었어야 할 텐데 가능했을까? 그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괴대’의 나무는 느티나무임이 명백하다. 이제 영괴대와 관련해서 더 이상 홰나무라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여러 가지 자료들도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덧붙여, 장헌세자 당시 한 그루를 심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 여러 자료 외에 영괴대비 뒷면의 음기나 『정조실록』에 수록된 ‘정조대왕 행장’에도 모두 1760년에 세 그루를 심었다는 내용이 일치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세 그루였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괴대에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금년 초까지 두 그루 있었던 후대의 느티나무 중 한 그루가 여름 언젠가 베어졌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건강칼럼] 턱관절 장애, 어떤 증상이 나타나고 어떻게 치료할까.. [온양신문사] 기자

[칼럼] 전통에 깃든 관념과 금기도 고려했어야 [온양신문사] 기자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신세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맹주완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국방기관 유치 힘쓰고 산업·교통..  

충남도, 재선충병 피해목 제거 ‘..  

“인형극으로 배우는 효, 함께 만..  

충남도, 잇따른 산재 사망사고에 ..  

‘안면도 소나무림’ 산림유전자..  

충남도의회, ‘전기차·산업현장..  

㈜광진기계 방문 화재안전 현장지..  

한올고, 일상 속 사물에서 지식의..  

충남다우리학교, 전통문화 체험으..  

온양고, 2026학년도 신입생 입학..  

쌍룡초 남현우 학생 전국과학전람..  

신창중, 책장을 넘어 작가와 마음..  

숲체험교육원, 가을 곤충과 함께 ..  

호서대, 대학 경영의 중심에 ESG  

기후살인 막는다…도·시군 머리 ..  

하천관리 담당자 실무 역량 높여  

문해력 향상 학습 자료 보급…“..  

충남교육청, 제1회 보건·의료 계..  

충남교육청, 역대 최다 메달(111..  

충남교육청, ‘독서경영 우수 직..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