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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혁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2022년 06월 17일(금) 14:08 [(주)온양신문사]

 

천렵과 어죽 한 그릇에 담긴 ‘낭만과 여유’

↑↑ ▲임윤혁(아산시 더큰시정위원회 위원)

ⓒ 온양신문

매번 느끼는 터이지만,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막을 수 없는 게 세월의 흐름이고, 거스를 수 없는 게 또한 계절의 변화다. 산과 들로 피고 지는 봄꽃들의 향연에 숨 멎는가 싶더니 어느새 계절은 ‘여름의 절정’(夏至)으로 치닫는다.

연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이즈음 밭에서는 감자 캐기가 한창이고, 지난 달 심은 모들도 자리를 잡고 푸르게 키들을 키워간다.


오월이라 한여름 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쪽 바람 때맞추어 보리 추수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타작 하오리라

(중략)

목동은 놀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뜨물에 꼴 먹이고 이슬 풀 자로 뜯겨
그루갈이 모 심기 제 힘을 빌리리라
보릿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땔나무 준비하여 장마 걱정 없이 하소

(중략)

하느님 느그러워 뭉게뭉게 구름 지어
때맞게 오는 비를 뉘 능히 막을소냐
처음에 부슬부슬 먼지를 적신 뒤에
밤 되어 오는 소리 주룩주룩 하는구나

(중략)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
새참 때 문을 나서니 개울에 물 넘는다
농부가로 답을 하니 격양가 아니런가


다산의 아들인 정학유는 <농가월령가> 5월령(양력 6월)에서 농촌 공동체의 유대와 때를 놓치거나 미루지 않고 준비하는 모습을 읊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끝도 한도 없지만, 예전 같았으면 그나마 손을 조금 놀릴 수 있는 이맘때쯤 청장년들이 마을 앞 냇가에 솥단지 걸어놓고 천렵(川獵·개울사냥)을 즐겼었다.

평촌마을 앞 온양천가나, 혹은 온천천과 곡교천이 만나는 옥정교 다리 밑에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더위도 식히고 농사일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곤 했던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쓰던 어항 꺼내 된장 발라 물살에 쓸려가지 않도록 돌로 받쳐 놓고 일부는 반두(족대)질로 개울을 가로질렀을 터이다. 냇가길 미루나무 삐죽한 잎새 사이로 파고드는 여울목 물살에 난반사되고, 물비린내 개의치 않는 아이들의 물장구 웃음소리는 한낮 땡볕 아래 정적을 깨고 맑게 울려 퍼졌으리라.

한참 부산을 떨며 잡은 피라미나 붕어, 꺾지, 모래무지, 빠가사리, 메기 따위 민물고기들은 배를 따서 고추장과 고춧가루 푼 국물에 넣고 살이 흩어질 정도로 팔팔 끓이다 국수나 수제비, 밥 등을 넣고 그 위에 파, 청양고추, 깻잎 따위 향채들과 양념을 올려 어죽을 끓여 먹으며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곤 했었다.

아낙과 아이들은 초벌로 기름에 튀긴 피라미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올려 온전히 익혀낸 도리뱅뱅이를 별미로 맛보기도 하고, 낮술에 불콰해진 어른들은 술자리 옮겨가며 새뱅이탕(민물새우탕)이다 메기매운탕이다 끓여가며 늦저녁까지 그야말로 ‘뽕’을 뽑기 일쑤였다.

세월이 하수상하다보니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광경이지만, 그 시절엔 그 시절 나름의 낭만과 여유가 있었다. 없이 살아도 쫓겨 살아도, 때론 쉬어가고 때론 돌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가 있었다. 모든 게 풍족해졌다고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 예전의 여유가 더욱 그리운 이즈음이다.

하여, 우정 평촌마을을 끼고 냇가를 따라 면소를 거쳐 궁평저수지까지 걸으며 생각의 끈을 이어간다. 그렇게 걷다보면 그 걸음의 박자에 맞춰 숨결도 따라가고 생각에도 리듬이 생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타래처럼 엉켜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기도 하고, 길게 끌고 오던 고민이 일시에 ‘툭’ 풀려버리기도 한다. 논리적이지 않은 게 오히려 더 해결이 쉽다. 고민의 순서도 필요 없다. 그러다 슬쩍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거기에 답이 있다.

한참을 걸으며 땀을 흘렸으니, 돌아가는 길에 오늘은 어죽 한 그릇으로 몸의 균형을 맞춰야겠다. 그런데, 아산의 그 많은 어죽집 중 어디로 가야 하나? 매번 하는 고민이고, 어쩌면 평생 풀리지 않을 숙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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