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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故 리한구 선생님을 애도하며

2022년 05월 20일(금) 13:17 [(주)온양신문사]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장)

ⓒ 온양신문

오랫동안 존경해온 어르신께서 지난 4월 17일에 세상을 뜨셨다. 조문하러 가서 영정을 뵈니 눈물이 났다. 영암(英菴) 리한구(李漢求) 선생님. 1928년 무진생이시니 올해 95세이셨다.

전주이씨이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패한 회안대군 이방간(李芳幹, 1364~1421)을 파조로 하는 회안대군파 19세(世)다. 이방간의 증손자인 회안대군파 4세 이사눌(李思訥, 1457~1519)이 온양정씨와 혼인하면서 대략 540여 년 전 온양 용화동 숫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후 후손이 그곳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사사로이는 그분의 누님이 어머니의 친구이셨고, 그분의 외삼촌의 친구이셨다. 그분의 아들은 내 친구이기도 하다.

세상사로는 18년간 온양신문의 대표이사를 역임(1990~2007)하시던 1996년 무렵부터 뵙기 시작했다. 온양신문은 편집국장 신홍철이 발행을 책임졌고, 신 국장이 대표이사로 추대한 리한구 선생님은 기댈 언덕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온천동 메아리’라는 칼럼을 통해 당신의 올곧은 생각과 풍부한 지식, 온양과 아산지역에 대한 사랑을 잘 보여주시기도 했다.

그 무렵 리한구 선생님은 ‘천도교 정통파 대표(관지포 도정)’도 맡고 계셨다. 조선 말기의 동학에 바탕을 둔 천도교의 계파와 내분 문제는 이 글에서 논외로 하되, 일제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했던 최린 계열 신파를 비판하면서 ‘구파’가 천도교의 정통이며 그 구파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리한구 선생님은 천도교 지도자 중의 한 분이셨다.

그리고 1996년 당시 주요 관심사 중 한 가지가 홍성에 있는 ‘900의총(홍주의사총)’이 의병들의 무덤이 아니고 1894년 가을의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당시 홍주성 전투 때 희생된 동학농민군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었다. 현재는 국가 지정 사적, 당시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였다.

농민군의 유해를 모은 무덤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뒤집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몇 가지를 살펴보니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 일을 도와드리지 못한 점이 지금까지 부채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홍주성 전투와 관련하여 리한구 선생님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계셨다. 할아버님이 그곳에서 돌아가시고 시신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이후의 탄압으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후손들이 갖은 핍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할아버님은 온양 지역 동학 초기 전파 당시인 1880년대 무렵 동학에 입도하여 도집강(都執綱)이 되었고 처남 이규호 등과 활동하였다.

1894년 10월에 신창 지역 지도자 정태영 등과 함께 기포하여 내포지역 전투에 참여했었다. 결국 홍주성에서 부상당해 체포된 뒤 초토사 이승우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온양행궁 관리인으로 그런대로 먹고살 만했으나 시대의 부름에 따라 역사의 현장에 참여했고 집안이 모두 동학, 이후 천도교도여서 후손이 오랫동안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다만, 이신교의 장남이자 리한구의 백부인 이종일과 정태영의 딸이 혼인함으로써 두 동학 지도자가 사돈 관계가 됐고 현재까지도 선장의 정해곤 씨와 리인철 등 두 집안 후손이 친밀하게 지내고 있으니 인연이 오래 이어지고 있다.

리한구 선생님도 집안이 어려워 당숙 집에 머물기도 했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아버지 이종선도 기미독립운동(1919)은 물론 멸왜기도운동(1938)에 참여하여 경남철도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한 뒤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시다가 건강을 해쳐 1943년 귀국 후 돌아가셨다.

↑↑ ▲故 리한구 전 온양신문 대표이사

ⓒ 온양신문

리한구 선생님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천도교에 입교했고 1949년 내포 지역 천도교 지도자 정환석(鄭煥奭)의 따님과 혼인했다.

잠재적 능력은 뛰어나셨던 것 같다. 생활을 위해 독학으로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을 심판하고 벌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장인의 권고로 2차 시험은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 삶의 방편으로 대서소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었다.

1970년대부터는 중앙일보 아산지국 주재 기자로 활동하면서 정론직필의 올곧은 언론인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언론 활동과 더불어 신정호 주변 정비, 623도로 개설, 어의정 정비, 기미독립·무인멸왜운동 기념탑 건립 등 지역의 여러 일에 기여하셨던 분이다. 국가적으로는 민족통일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지역의 큰 어른 한 분을 뵐 수 없게 되었으니 슬픔이 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이 허전할 것 같다. 다시 한번 환원하신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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