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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2022년 04월 23일(토) 15:28 [(주)온양신문사]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다시 읽기

↑↑ ▲유은정(아산학연구소 초빙교수)

ⓒ 온양신문

드넓은 초록의 잔디밭에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한 8살의 소년!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어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한 시인은 이를 “잔디밭 위에 쓴 일행시”라 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출을 한 이가 바로 이어령 교수이다.

이어령 교수는 1934년 1월 15일 아산시 좌부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022년 2월 26일 향년 8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교수는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한국일보에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데뷔하여 수필,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으로의 삶을 살았으며, 1990년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저항의 문학’(1959)을 비롯하여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1966),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젊은이여 한국을 이야기하자’(1986), ‘디지로그’(2006),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2021) 등이 있다. 수많은 작품과 업적을 남긴 이어령 교수에게는 “한국 지성의 큰 산맥”, “언어의 거인”, “우리 시대의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이러한 수식어가 붙은 데에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작품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경향신문에 연재하였던 글을 모아 1963년에 출간되어 올해로 60년이 되었다. 이 책은 발표 당시 1년에 1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으로 40주년을 기념하여 개정판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어령 교수는 당시 서른 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한국인 최초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과감하게 비평하였다.

“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가 크나큰 상처처럼, 공동처럼 열려 있다. 그 상처와 공동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여린 색채의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는 이 교수는 ‘우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이면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하며, “우리들의 성장”은 “아파해야 된다는 것, 그 아픔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작품에서는 한국인의 모습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장죽, 지게, 갓, 화로 등의 물건을 통해서 분석한다. 이 교수는 장죽을 통해 우리의 게으름, 비행동성을, 지게를 통해 좁은 길에 자기를 순응하고자 했던 사고방식을 이야기한다. 갓을 통해서는 권위주의, 형식주의, 보수주의와 같은 풍습을 비판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국이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우리 마누라’와 같은 표현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자기 주체성이 박약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꼬집는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래질’을 통해 ‘제각기 다른 동작으로 다른 위치에 서서 힘을 합칠 때 한국은 강하다’며 한국적 ‘힘의 단합’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한국을 이해하려 하였다. 우리나라 돌담의 경우, 중국의 담벽에 비해 낮고, 일본의 ‘이케가키’보다는 높다. 이는 돌담이 폐쇄와 개방의 중간에서 한국의 ‘반개방성’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서양인의 노크 대신에 기침 소리로 “지금 사람이 들어가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것, 은근한 교통”이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밖에도 한국의 문화는 다양하게 표현된다. 울음, 굶주림, 풀이름․꽃이름, 눈치 등의 키워드들도 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울음에 대하여’에서는 새소리, 냇물 소리 등 “주위의 모든 것까지를 ‘울음’으로 들었다”며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눈물에서 싹터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은 “슬픔과 한이 많기에 달빛을 사랑하는 민족”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다채로운 소재를 통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새롭게 바라본 신선한 관점이 돋보인다.

이 교수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에세이를 통해 “여기에서 한국의 자화상을 그려” 보고자 하였으며, “나의 견해가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이어령 교수의 한국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아산 출신 예술인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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