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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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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위 유적을 제대로 보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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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15일(토) 18:57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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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 ⓒ 온양신문 | 오늘은 매우 속상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실은 몹시 화가 나고 또 가슴 갑갑한 일이기도 하다. 바로 게바위 유적 코앞으로 고속도로가 나는 일 때문이다. 인주면 해암리에 있는 게바위는 아산시민들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충무공 이순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상당히 잘 알고 있는 뜻깊은 유적이다.
◈ (1597년 4월) 13일, 계유. 맑음.
일찍 아침을 먹은 뒤 어머님을 뵈러 가기 위해 바닷가로 가는 길에 홍찰방 집에 들러 ~~ 잠시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하였다. 가슴을 치며 펄펄 뛰는데 하늘의 해도 캄캄하였다. 즉시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이미 와 있었다. 겨를이 없고 가슴 찢어지는 슬픔에 통곡하였다. 이루 다 적을 수 없어서 나중에 간략히 적었다.
(十三日 癸酉 晴 早食後 往延事 出登海汀路 路入洪察訪家 (중략) 有頃 奴順花至自船中 告天只訃 奔出擗踊 天日晦暗 卽奔去于蟹巖 則船已至矣 路忙慟裂 不可盡記 追錄草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난중일기』 중 「정유일기」의 내용 중 일부다. 게바위 유적은 이순신이 바로 그날, 여수에서 뱃길로 아산을 향해 오시던 중 배 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뵈었던 곳이다. 이순신은 어머님은 ‘하늘(天只)’로 여겼던 효자였으니 이미 병이 깊고 고령이셨지만 어머님의 별세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임종도 못 하였고, 배 위에서 돌아가셨으며 자신은 또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백의종군을 위해 길을 나서야 하는 처지였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여수에서 올라올 때 관으로 쓸 목재를 배에 싣고 왔기 때문에 사흘간 게바위(해암) 나루에 머물면서 관을 짜고 어머님 유체를 입관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4월 16일에 영구(靈柩)를 배에 싣고 게바위 나루를 떠나 중방포까지 옮긴 뒤 육로를 이용해 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빈소를 마련했으나 이순신은 사흘 뒤인 4월 19일 다시 남행길에 올라야 했다. 그 길이 아산에서는 결국 이생에서의 마지막 길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꽤 여러 해 전부터 적지 않은 분들이 게바위를 찾고 있다. 이순신과 어머님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아산의 집에 들러 보름을 머물렀다. 그가 아산으로 내려온 길, 게바위 나루에 다녀온 길, 아산을 떠나 남으로 내려간 경로의 옛길을 추정하여 ‘아산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라 일컫는다.
그중 내려온 길을 ‘충의 길’, 게바위에 다녀온 길을 ‘효의 길’, 다시 남으로 내려간 뒤 왜란을 끝내고 마침내 나라를 구한 길을 ‘구국의 길’이라 이름하였다.
아산시에서는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추정 옛길을 기본으로 하되 걷기 좋은 대체 길을 마련하여 정비하기로 하였다. 2020년에 ‘효의 길’은 주로 곡교천 북쪽 제방 길을 정비하였다. ‘충의 길’과 ‘구국의 길’은 금년에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는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앞으로 시민들이 그 길을 걸으며 이순신과 어머니, 나아가 아산 지역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게바위 주변에는 지난해에 시민의 세금을 들여 의미도 새길 수 있고 나름 볼만하게 정비도 해놓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게바위 유적이 훼손될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물론 게바위를 직접 건드리지는 않지만, 게바위에서 불과 10m 안팎의 거리를 두고 15m인지 20m인지 정도 되는 높이로 흙을 돋은 뒤 고속도로를 낸다는 것이다. 눈앞을 거대한 ‘만리장성’이 가로막는 실정이다.
곡교천이나 들판은 커녕 하늘도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일 형편이다. 게바위 유적은 당시 이순신은 바닷가라고 했던, 곡교천 물가에 있는 포구 유적이다. 곡교천 물길이 바뀌어 갯벌은 논으로 바뀌었으나, 저 앞에 곡교천이 흐르고 있으니 그런 요소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한눈에 보여야 제대로 된 유적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여러 해 전에 고속도로 신설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필자가 보았던 기본 노선은 분명 게바위에서 동쪽으로 수백m 정도 떨어져 지나는 경로였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세상살이에서 도로 역시 필요한 요소이니 멀찍이 지나간다는 것으로 위안 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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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1년 3월 3일의 게바위 유적 주변 모습 <사진제공=천경석> | ⓒ 온양신문 | | 그런데 지난해 말쯤에 마을 이장님에게서 바로 앞으로 지나간다는 말씀을 들었고, 급기야 금년 봄에는 게바위 바로 코앞으로 어느새 뻘건 깃발을 가는 쇠말뚝이 쭉 박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게바위 유적은 아산시에서 지정한 ‘향토문화유산’이고 국가나 도가 지정한 이른바 ‘지정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보호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게바위가 위치한 인주면 해암2리 신성리 마을 주민들은 수가 많지 않고 대부분 고령이어서 어떤 대책이나 항의 또는 저지를 위한 행동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덕수이씨 집안에서도 관심은 있는 듯한데 어찌 나설지는 알 수 없다. 도로 공사의 발주처나 사업 시행 업체는 중간에 경로가 바뀐 사실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돈만 따지고 있다. 우리가 이 길을 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서 드러누워야 하나, 어디라도 가서 항의를 해야 하나. 한 달 전에도 혹시 이 모습을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무슨 영정 사진 찍는 마음으로, 유언을 듣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었다. 이 일을 막지 못하면 지역의 후인으로서 두고두고 죄인이 될 것 같다는 심정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게바위 나루에 왔던 이순신의 심정을 담은 4월 13일 자 일기의 뒷부분 내용이 새삼 절절하다.
“~~ 가슴을 치며 펄펄 뛰는데 하늘의 해도 캄캄하였다. 즉시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이미 와 있었다. 겨를이 없고 가슴 찢어지는 슬픔에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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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1년 3월 3일의 게바위 유적 주변 모습 <사진제공=천경석> | ⓒ 온양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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