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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혁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2021년 04월 16일(금) 16:52 [(주)온양신문사]

 

봄, 아산, 그리고⋯

↑↑ ▲임윤혁(자유기고가, 아산시 더큰시정위원회 위원)

ⓒ 온양신문

봄은 그렇게, 지난겨울의 혹독함을 뚫고 수줍게 피어나는 연초록 싱그러움으로, 잔잔한 바람에도 나풀거리는 플레어스커트의 경쾌함으로,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갓난아이의 깔깔거림으로, 홀연히 다가왔다.

현충사 홍매로부터 시작된 봄의 태동은 남산자락에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 흐드러지게 피워내더니, 어느새 신정호변으론 명자, 철쭉, 박태기, 수수꽃다리 수채화로 투명하다.

피어나는 게 어디 꽃뿐이랴.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렸지만, 눈가에 피어나는 생기까지 숨길 순 없는 노릇. 산하에 초록물 들 듯, 나날이 산뜻해지는 옷차림에선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 봄을 만끽하고 싶은 욕구가 푸르게 묻어난다.

시절은 한창 들일에 바빠질 곡우 즈음이건만 여전히 꽃에 홀리고 우전차(雨前茶) 진향에 목말라 하는 건, 새로운 터전에 오롯이 깃들지 못하고 빙빙 주위만 맴도는 경아리의 치기런가.

아무려나, 내 고장 아산에도 봄기운 완연하다. 염치 들녘으론 살포시 고개 내민 감자 싹 북돋우기 한창이고, 곡교천변 은행나무나 버들가지도 여린 잎 틔워내며 강물에 비친 제 모습에 빠져든다.

아열대화 되어가는 기후 탓에 차농사 짓기가 한결 수월해진 이즈음, 음봉 신수다원 진초록 무성한 찻잎 사이로 보송보송한 작설(雀舌) 어여쁘다. 둔포 너른 들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영인산 철쭉은 군락으로 화려하다. 일지춘심(一枝春心)이야 자규(子規)가 알든 모르든, 살랑이는 훈풍에 춘심(春心) 일렁이고 다정(多情) 역시 만발이다.

이 말 많은 세상을 향해 자연이 토해내는 무언의 변화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사여구보다 더 명료하고 아름다우며, 한편으론 부드럽고 준엄하기까지 하다.

시국은 코로나다 뭐다 하 수상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계절의 흐름을 막을 순 없는 노릇. 사람들은 저마다 봄의 생기를 만끽하며 다가올 희망을 꿈꾼다. 나 역시 그런 희망을 안고 산사에 올라 소담하고 정갈한 다탁 사이하고 비구와 마주 앉았다.

녹차의 진향(眞香) 서너 평 남짓 선방 안에 그윽하고 찻종에 물 따르는 소리만 잠깐씩 침묵의 벽을 허물뿐이다. 중생은 뭔가를 내놓으라고 자꾸만 짓조르고 비구는 줄 게 없다고 한사코 버틴다. 그저 차나 마시고 가란다.

그 옛날 초의(草衣)가 ‘동다송(東茶頌)’을 읊으며 그랬다던가. “양양한 맑은 밤이슬 다 마시고 삼매에 든 손 안에 기이한 향 분분히 오르네. …옥화 한잔 기울이니 바람이 겨드랑에 일어 몸 가벼이 이미 맑은 경지에 올랐네. 밝은 달로 촛불하고 벗도 해서 흰구름 자리 펴고 이로서 병풍도 치네”. 어찌 차에 취하고 다도 삼매에 빠지는 게 초의 뿐이랴.

그렇게 짓조르고 버티는 와중에 찾아든 평상심.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 안으로 깃드는 산새들의 지저귐 반갑고, 요사채 앞마당 비바람에 시달리다 떨어져 내린 연분홍 봄꽃들의 처연한 낙화 또한 기껍다. 산중 절집에서 느끼는 평상심이 무에 그리 대단하랴만, 앞뒤 위아래 분간 없는 세월을 살아내다 보니, 그만한 평상심에도 절로 감격하고 한편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하니 명리가 다 무에며, 화려한 수사로 치장한 법문이 무슨 소용이런가.

산사를 되짚어 나오는 길. 나 자신도 소도 모두 버리고(人牛俱忘)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간절하다. 천만 가지 분별이 붉은 화로 위의 한 점 눈이라 한 티끌의 그림자도 남기지 않으니, 해탈에 대한 갈구마저 내려놓은 지 오래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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