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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가 지나면 1양(陽)이 생(生)하고 하지(夏至)가 지나면 1음(陰)이 생(生)한다. 동지가 지났다고 하여 다음날부터 더워지는게 아니고 하지가 지났다고 하여 다음날 부터 추워지는게 아니다. 음(陰)이 점점 쇠퇴(衰退)하고 양(陽)이 점점 성(盛)하여 하지가 되면 반대로 양(陽)은 점점 쇠퇴(衰退)하고 음(陰)이 점점 성(盛)한다. 그래서 12개월의 시간과 공간이 흘러가야 1년이라고 한다. 우주의 기후 변화도 상당한 시간과 공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변하는 것인데 하물며 인간사(人間事)도 다를 바 없다. 새로 탄생한 정권이 전(前) 정권의 정책 일부를 급속도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 피해가 가난한 국민과 허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미칠 것이다. 때문에 급속히 서둘지 말고 천천히 변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기후 변천과 세상 변화를 말하다 보니 우리 온양신문사의 지난날의 고통스럽고 쓰라린 시기가 회상된다. 19년전 온양신문이 창간하여 처음 사무실을 개설한 곳은 송악나드리에 조그마한 방1 칸을 세얻어 일을 했으며 그 곳이 여러가지로 여의하지 못해 너더리(용화3구쪽) 입구로 이사했다. 그곳 역시 1칸쯤 되는 공간이였으나 석양의 햇빛이 심하게 들어와 참아내기 어려운 곳이였다. 모두가 돈이 없어 넉넉한 곳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그후 신우새마을금고에서 관리하는 건물로 즉 온천2동쪽으로 이사하여 자리가 안정될 듯 했으나 당해 건물에 교회가 입주한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온천1동(구 탕정관 자리) 지하건물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 곳 역시 오래 있지 못하고 또다시 아산전화국앞 담배인삼공사 건물 지하실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 지하실은 습기가 많아 전자제품에 고장이 자주 발생하여 작업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다시 정우새마을금고로 이사했다. 당시 정우새마을금고 이사장인 강태봉 도의원께서 온양신문에 대하여 배려해 주어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결정 해주어서 몇 해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 헌데 정우새마을금고 현 이사회에서 신문사 사무실을 자기들이 회의실로 사용하기로 결의했으니 비워달라고 통지해왔다. 건물주가 자기들이 사용한다고 비워달라고 하니 하는 도리없이 비워줘야 한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에게 보은의 보답도 하지 못함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데 돈만 있으면 장소는 얼마든지 있지만 돈이 없으니까 문제다. 문득 형장에 끌려가면서 읊은 성삼문 선생의 시구가 생각난다. “격고 최인명(擊鼓 催人命: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 듯 북을 치는데) 금야하처숙(今夜何處宿:오늘밤에는 어느 곳에서 자야하나)” 지금 우리 온양신문의 처지와 비슷하다. 돈 장사하는 마을금고가 손해 보는 일을 하겠는가? 당연한 요구다. 온양신문도 구독료만 제대로 수금되면 문제될게 없지만 말이다. 적수공권으로 시작한 온양신문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독자 여러분들의 애호에 힘입어 8천부의 독자를 모셨으며 신문사로서의 여건이 거의 구비됐다. 이제 문제는 경제적 좋은 여건만이 기대된다. 돈이 많이 생기는 사업이라면 누구나 달려들겠지만 이(利)보다는 실(失)이 많은게 언론사다. 누구나 달려드는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신문은 확실하게 말해서 지방의 문화사업이며 지방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 사업이라고 하겠다. 아무나 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에 내심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꾸준히 전도로 매진 해왔다. 한번 성(盛)하면 한번 쇠(衰)하고 한번 쇠(衰)하면 한번 성(盛)하는 1성(盛) 1쇠(衰)의 순환이치(循環理致)가 우리 온양신문에도 있다. 지난날의 쇠운(衰運)이 앞으로는 성운(盛運)으로 반드시 올 것이다. 우주의 순환지리처럼 말이다. 부자가 지극히 부자가되면 가난하게 되고 가난한 것이 지극히 가난하면 부자가 된다. 우리 온양신문은 꼭 시시비비를 가려내여 정론제세(正論濟世) 할 것이다. 우리 온양신문 애독자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의 뜻을 드리며 기자들에게는 넉넉히 예우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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