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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혁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2021년 10월 01일(금) 16:01 [(주)온양신문사]

 

골목 단상_ 내 곡진한 삶의 실핏줄 같은

↑↑ ▲임윤혁(아산시 더큰시정위원회 위원)

ⓒ 온양신문

내 자랄 때는 골목이, 학교 운동장을 빼놓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맘 놓고 뛰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한겨울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식전’부터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책가방 챙겨 대문을 나서선, 바로 이웃한 친구들 집 앞으로 몰려다니며 “누구야, 학교 가자!” 무리를 지어 등굣길에 나서곤 했었다.

나 어릴 적 살던 동네 역시 긴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빽빽하게 집들이 들어선 전형적인 변두리 주택가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그 골목길에서 구슬이나 딱지치기도 하고, 술래잡기나 비석치기 같은 놀이로 시간가는 줄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좁은 골목에서 가능했는지 싶을 정도지만, 우리들은 먼지 피워가며 부산떤다고 핀잔 들어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공도 차고 야구도 했었다.

한파가 매서운 한겨울이면 어른들 몰래 밤늦게 물통들을 들고 나와 골목길에 뿌려 다음날 아침 잠깐이나마 얼음도 지쳤다. 물론 곧 어른들이 나와 타고 남은 연탄재를 뿌리며 “이눔의 자식들” 누구랄 것 없이 싸잡혀 지청구도 들어야 했지만, 돌아서선 다음 작당을 모의하며 키득거리기 일쑤였다.

날이 어둑해져 “저녁 먹으러 안 들어오면 상 치워버린다”는 부모님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굳건한 형제가 되어갔다.

골목은 “큰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로 정의된다. 예전 산업화 시대에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골목이 생겨났었다.

그렇게 좁은 길을 사이로 대문을 낸 집들은 지역에 따라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대부분이 블록으로 지은 집이었는데, 더러 오래된 고택부터 이층 양옥집, 슬레이트집이나 판잣집도 눈에 띄었다. 대개 한 집에는 주인과 세입자 1~2집을 포함해 어른 대여섯 명과 노인 서넛, 아이들이 예닐곱 남짓 살게 마련이었다.

내가 살던 골목에는 큰 버드나무가 담 밖으로 늘어진 ‘공귀신집’이 있었고, 여름 끝자락이면 높은 축대 위로 청포도가 달리는 ‘포도나무집’이 있었다. 공귀신집은 노부부만 산다고 알려졌었는데, 그 집 어른들을 본 아이들이 없어 머리에 뿔이 났다는 등 소문만 무성했다.

공귀신집은, 좁은 골목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다가 공이 이 집 담장만 넘어가면 다신 찾을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였다. 대문은 항상 굳게 잠겨 있었으며 불러도 응답이 없어, 담장 너머로 종주먹질만 해대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보면, 골목은 동류(同類)와 이류(異流)의 경계이지 싶다. 한 골목 안에 사는 아낙들끼리, 바깥양반들끼리, 그리고 아이들끼리, 이들은 기본적으로 동류였다. 자연스럽게 ‘이웃사촌’이라는 친척의 반열이 형성되었다. 물론 ‘공귀신집’처럼 쉬이 섞이지 못하는 ‘이류’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가 나머지의 동류의식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도 골목에 따라 무리 짓는 부류가 달랐다. 겨울철,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위아래 골목 간 눈싸움이 치열했다. 서로 진지까지 구축하고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는 눈싸움에 더러는 눈뭉치 안에 넣은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터지는 일도 발생했다.

만약 다른 골목 아이한테 맞았다면, 이유 여하를 떠나 중학생, 혹은 일체 골목에 나오지 않던 고등학생 형들까지 나서서 ‘피의 보복’을 가하곤 했었다.

그렇게 골목 안에서 함께 뒹굴며 관계를 쌓아가고, 형들에게 배우며 저학년은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으로 커갔다. 그때 우리들은 그 골목에서 어른이 되고 늙어갈 줄 알았었다.

온양에도 그런 골목길들이 여럿 있다. 온천 경기에 힘입어 사람이 몰리며 집들이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골목길도 생겨났다. 온천역 뒤편 언덕 위 개성식당 골목이나, 역전 방앗간 뒤편의 너더리 일대, 신정식당과 강원냉면 앞쪽으로 지금은 없어진 깡통골목 등이 그런 곳들이었다.

그 뒤로 온양 도심이 확대되며 골목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을 터인데, 아산고 밑으로 3개의 골목이 나란한 온양 7통(번영로 115번길 일대)은 곧 ‘안심마실길’로 정비가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밖에 한올고 뒤편 청운로 176번길 일대와 한올고 건너편 충무로 94번길 일대 골목길에는 감성에 어필하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골목의 재발견’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아산시도 인구 증가와 함께 수용의 한계에 직면한 원도심이 아닌, 외곽의 신도시들로 수요가 쏠리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정감 있는 골목들은 점점 더 퇴색되고 줄어들 전망이다.

그런데 이 신도시, 특히 아파트 단지들은 효율성에 중점을 둔 공간구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매우 규칙적이며 예측 가능한 시설과 가로망 배치를 통해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편리함과 원활함에 방점을 찍는 설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히 예전의 비정형적이며 예측이 불가능한(어떻게 공간이 이어질지 모르는), 그로 인해 상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있나, 호기심도 줄어들었고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재미도 없어졌다. 끝에서 끝이 훤하게 내다보이니, 보이지 않는 앞길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다.

골목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느긋해지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여유도 찾게 된다. 골목 안 풍경들은 대개 내 눈높이와 비슷하고,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자리하기 때문에 편안하고 또 재미있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자라난 세대들에게는 그 골목이 바로 자신이 살아온 곡진한 삶의 핏줄로 각인된다. 그 익숙한 골목길에 들어서야 비로소 온몸에, 그리고 기억의 회로에 피가 돌며 명징하게 깨어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사라져가거나 혹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골목도 찾아 가꾸고 스토리도 입혀야겠지만, 새롭게 들어서는 신도시나 혹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같은 곳들도, 소통과 변화와 나눔을 이룰 수 있는, 그리하여 새로운 즐거움과 이웃 간의 정을 키울 수 있는 골목 공간 조성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권곡동 카페에 들렀다 내친 김에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덧 골목의 끝자락이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어 느리게 돌아서자 ‘와락’, 지나온 세월이 한달음에 거리를 좁혀온다. 어느새 성큼, 가을의 한가운데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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