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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之不亦悅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라는 말이 있다. 논어의 첫 장에 나오는 말로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는 배움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배움에는 때가 따로 없고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학습을 화두로 삼고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에 우리 주위에 평생학습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 있다. 우리 지역 한상순 할머니가 그 주인공으로 72세의 한 할머니는 현재 권곡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중·고·대학교에 다니는 늦깎이 학생은 심심치 않게 보아왔지만 70줄의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대개는 집안에서 손자·손녀에게 구박(?) 받아가며, 남들 어깨 너머로 눈치껏 깨우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한 할머니의 남다른 의지가 돋보이는 것은 취학연령의 제한을 무릅쓰고 학교장에게 떼를 쓰다시피해서 배움의 길에 나섰다는 데 있다. 교사에게 교장은 어버이같은 존재다. 그 교장 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분이 손자·손녀 같은 교사에게 자청해서 제자로 들어가기가 쉬운 일일까? 웬만한 열정과 의지가 있지 않다면 힘든 일일 것이다.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 중에는 배움에 목마른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이 한참 배웠어야 할 시기에 해방과 좌우익의 대립과 6·25전쟁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몰렸던데다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와 아직도 시골지역에 만연했던 고루한 남녀차별주의 때문에 특히 할머니들의 배움의 길은 극히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자식들 길러 배우게 하려고 온몸 내던지며 생활하다보니 정작 자신들을 돌볼 생각은 미처 하지도 못했고, 그 고생을 해가면서 자식들 다 길러 놓고 가까스로 자신을 의식했을 때는 이미 배움의 시기를 한참 지나처버린 것을 알아버리고 자포자기에 빠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이런 분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에게 정작 배움의 문은 매우 좁게 열려있을 뿐이다. 정규학교의 취학연령 제한이 그렇고 이런 분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인력과 학습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민간단체나 교육·행정관청에서는 명문대 입학생 수만 세면서 교육도시 건설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렇듯 배움의 사각지대에서 시기를 놓치고 자포자기에 빠진 분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잃어버린 배움의 길을 터주기를 바란다. ‘평생학습도시’는 그러라고 붙여준 ‘면허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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