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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2021년 08월 13일(금) 11:07 [(주)온양신문사]

 

풀과의 전쟁

↑↑ ▲홍승균(온양문화원 이사)

ⓒ 온양신문

“여름이면 이름값 하느라고 더운 게지.”하며 도인 흉내를 내보다가 결국 못 견디고 혀를 빼문다.

작열하는 태양에 비해 강수량은 적은 올해다. 한여름 작물은 타들어 가는 데 비해, 도대체 무엇을 마시는지 풀들은 굳세게 땅을 비집고 나온다. 농군들은 작물을 재배하는 내내 풀과의 전쟁이지만 또 한편 성난 눈초리로 풀들을 대하는 이들이 있다. 조상들의 묘역을 관리하는 이들을 말하기 위함이다. 선현들로부터 이어온 고향을 등에 이고 사는 이들이나 묘역의 주인공들로부터 가까운 주요 줄기의 후손이 그들이다.

조상의 묘역이 산중 깊이 소재한다면 그래도 눈치는 덜 보인다. 반면 풍수적으로 탁월하여 장쾌하게 트인 경관을 자랑하는 선조들의 위풍당당한 묘소는 그만큼 남들 눈에도 쉽사리 지적받기 마련이다.

후손들의 이러저러한 사정은 알 바 아니고, 봉분의 둥그런 윤곽이 흐릴 만큼 풀이 무성한 모습은 언뜻 성의 없는 자손이 되어버려, 게으름으로 비치니 못내 민망스러워진다. 대처에 나간 집안 형제들이야 무감각하겠지만…

모든 문중에서 조상을 현양하는 대소사 모임을 할 적마다 풀 걱정하는 시간이 태반이다. 누구라도 풀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아래’ ‘근사미’ 등 농약 이름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어 놀랍다. 그에 더하여 제초제의 배합 비율에 따라 못 견뎌내는 풀의 종류를 짚어낼 정도로 모두가 박사들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작년에 한바탕 전쟁을 치러 이겨냈던 풀이, 올해는 엉뚱한 놈들이 등장하여 다시 일전을 치르게 되는 현상으로 보면 선수 교체한 풀의 영악함도 만만치 않다. 한참 풀과 일진일퇴를 하다 보면 노변에 삐죽 올라온 풀이나 심지어 보도블록의 그 좁은 틈새에서 고개를 쳐드는 풀만 보아도 적개심이 인다.

이 터전에서 뿌리 깊다고 자랑하는 집안네들은 반대로 풀이라는 숙제를 부여받았음이다. 필자도 누군가의 후손으로서 가끔이나마 동참하는데, 조상의 오랜 묘소를 깎고 또 깎으면서 땀을 흘리는 나름의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지켜보는 눈 때문이다. 남들 눈이 아니라 봉분의 양옆에서 숱한 세월을 풍찬노숙 묘소를 지켜내고 있는 문인석의 쳐다봄이다.

문인 석상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후손들이 묘역을 단장하며 조상의 공로와 덕을 숭앙하는 하나의 장식적 부속물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묘역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석상의 모습이 천양지차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묘소의 주인인 피장자의 내력을 알게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의 생전 모습이 문인석에서 투영됨이 느껴지고 그 후로는 석상의 표정과 눈매가 예사롭지 않게 나름의 감정이 묻어있는 조각임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는 어머니의 만삭 배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듯 다시 대지로 돌아가서는 만삭의 둥그런 봉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반원형의 봉분 모습이 천편일률인 데 비해, 묘지의 석물은 후손들의 재력과 권세 그리고 정성의 결과치로 다양한 구성이나 규모로 제작된다.

그중 문인 석상은 크기와 상관없이 이름 모를 석공의 창작혼을 담아 완연히 다른 표정들을 지니고 있다.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좌우 다른 석공이 제작하기도 하며 같은 이의 손끝일지라도 틀에서 찍어내지 않는 한 이질적인 모습으로 완성된다.

석상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생전 행각에 따라 석공의 마음이 발현되기 때문에 폭정을 일삼은 왕족이나 사납고 인색했던 대감마님의 석상은 왠지 모르게 그 얼굴 또한 고약한 모습을 띤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고매한 이에겐 완숙하고 묵중한 미소가 향기롭고 그윽하다. 문인석의 풍모에서 주인공의 인물됨을 유추함에 오차가 적다.

애초 석상의 제작은 석공이라는 투박한 예술가의 손으로 창작되지만, 그 후에는 세월의 비바람과 무량한 햇살이 차곡차곡 만들어낸 대자연의 후보정 작품이다.

↑↑ ▲<왼쪽> 도고 현기(玄琦) 묘 문인석. <오른쪽> 송악 죽창 강주(姜籒) 묘 문인석

ⓒ 온양신문

우리 아산의 입향조는 600여 년의 연륜을 간직한 문중이 있는 만큼 그 묘역의 석상은 장구한 세월 동안 묘소를 지켜낸 산 역사요, 반백년의 사연을 간직한 석물 조각품이다. 비단 후손에게만 소중한 조상의 유산이 아니라 엄청난 시대성을 간직한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단지 특정 문중에 해당하는 구조물이요 관리주체가 그들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 그리고 묘지 석물이 지켜온 피장자에 대한 공과에 따라 평가를 주저할 때 산성비를 비롯한 공해와 삿된 이들의 절도 그리고 자연재해에 의한 손상의 위험은 쌓여만 간다. 엉뚱하게도 그 가치를 미리 발견한 안목은 재화의 대상으로 판단하여 몰래 매매하는 그릇된 범죄인의 몫이 되곤 한다.

이번에 우리 아산에서는 오랜 묘소의 묘표와 신도비를 몇 기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이제 시작이다. 어느 집안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 지역의 오랜 문화유산이요, 훌륭한 조상의 석조 유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상들이 강조하고 훈육했던 효행 현장의 교육적 자산으로 새롭게 정립하였으면 좋겠다.

묘역의 풀이 솟아 문인석의 무릎을 지나 허리춤까지 올라치면 무척 황망하기만 하다. 수백 년 전 봉분 아래 누워계신 분이 아니라 양옆에서 노려보는 석상의 노여움. 그러나 깔끔하고 단정하게 이발을 해 드린 후 떳떳하게 쳐다보면 어느새 만족한 듯 자애로운 미소로 칭찬해주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하산하는 뒷모습에 부끄러움이 없다.

객쩍은 소리라며 어른께 매년 혼나면서도 뙤약볕에 숨이 가쁠 적에는 또 같은 소리를 한다.
“산소에 염소를 좀 풀어놓으면 안 될까요?”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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