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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2020년 06월 26일(금) 15:53 [온양신문]

 

사소한 공부의 소소한 즐거움

↑↑ ▲천경석(아산향토연구회)

ⓒ 온양신문

꽤 오래된, 1970년대에 들었던 이른바 ‘난센스 퀴즈’ 중 한 가지가 근래에 몇 차례 생각났거나, 내 입으로 일부러 언급한 적이 있다. 좀 살벌하고 무자비한 내용이고, 또 가뜩이나 인간에게서 끊임없이 수난을 당하는 코끼리에게는 많이 미안한 우스갯소리다. ‘바늘로(바늘 하나로) 코끼리 죽이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정답’이라고 이야기되는 그 방법이 세 가지였다고 기억된다. 우선 바늘로 한 번 찌르고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죽을 때까지 바늘로 계속 찌르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끼리가 죽기 직전에 바늘로 딱 한 번 찌르는 방법이었다.

그중 첫째, 둘째 방법이 필자가 주로 떠올리거나 얘기하는 내용이다. 어떤 난관을 이겨내는 방법이랍시고 누군가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절대 지지 말라고 좋게 말해준다는 풍신이 그런 예를 들었던 거다. 또 한 가지는 필자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내용에 관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의문의 끝’을 놓지 않고 있는 걸 비유한답시고 그런 조로 말해보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1819년)를 처음 접했다. 그때 아산현에 관한 여러 내용을 어쩌면 그렇게 자세히 기록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어금니 바위’ 기록이 없다는 점이었다.

음봉 동암리 구리바위, 영인 백석포 백석에 영인산 상투봉 흔들바위까지 기록해 놓았는데 어째 아산의 유래가 된다는 그 중요한 바위에 관한 기록이 없을까. 그 의문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이따금씩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생각했고 뭔가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략 20년 만에 내린 잠정적 최종 결론이 일제강점기에 누군가가 ‘아기 업은 바위’, 한자어로 부아암(負兒岩)을 아산의 첫 글자 ‘어금니 아(牙)‘자에 맞춰 멋대로 ‘어금니 바위’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영인산과 그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고을(아산)의 백제 때 우리말 이름은 ‘으뜸(가장 큰) 산’을 뜻하는 ‘엄술(또는 엄수리)’이었을 것이다. 이를 음차, 훈차해서 한자로 표기했는데 그 여러 한자어가 사실은 같은 말, 같은 내용이다. 즉, 아술(牙述)=음봉(陰峯)=음잠(陰岑)=아산(牙山)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영인산에 ‘엄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이 남아있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 느껴졌다. 이 내용은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된 ‘잉읍현(仍邑峴)’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온양 가리천(加里川, 지금의 온양천)의 근원 세 곳 중 한 곳으로 ‘(온양)군 동쪽 잉읍현’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따른 후대의 자료가 여럿이다.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베낀 듯한 『여지도서』(1760년경)에는 ‘읍’자를 빼고 ‘잉현(芿峴)’이라 했다. 잉읍현이 어떤 고개일까. 지리상으로는 분명 배방 수철리에서 광덕 보산원으로 넘어가는 넙티(고개)다. 후대의 한자어는 넙티를 뜻 그대로 한자로 옮긴 광치(廣峙)다.

지난 몇 해 동안 이순신 백의종군길 경로 확인 때문에 여러 차례 넙티를 가보면서 문득 우리말 이름 넙티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런 것이라 잠정 결론을 내린 셈이다.

즉 넓다는 우리말 ‘넙’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서 너(영어 you)를 뜻하는 이(니)의 한자 你에 ㅂ을 대신하여 邑(읍)자를 써서, 즉 ‘你+邑=넙’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조사해서 적은 사람은 분명 넙티를 이읍현(你邑峴)이라고 기록했을 텐데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옮겨 적는 과정에서 ‘你(이)’를 비슷한 글자 ‘仍(잉)’으로 잘못 쓰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잉읍현이라고 한 오류를 범했다는 결론이다. 필자 나름으로는 99% 확신을 갖고 있다.

또 하나, 송악면 거산리의 구만리(九萬里)라는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시대에도 기록되어 있는 마을이고 ‘구만(90,000) 명이 피난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진다. 도대체 왜 구만리라 했을까.

가봤다. 몇 차례 또 가봤다. 그리고 역시 몇 해 전에야 비로소 결론에 이르렀다. ‘굼’에서 비롯된 지명이었다. 국어사전에는 굼이 ‘구멍의 방언’이라고 했지만, 방언(사투리)라는 표현을 부적절하다. 원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땅이 움푹 파인 곳을 뜻하는 ‘움’은 ‘굼’이 변해서(ㄱ이 탈락해서) 생긴 말이다. 제주도의 커다란 화산 분화구 이름 중 하나인 산굼부리에는 그 음이 그대로 살아있다.

거산리 구만리는 굼 안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굼+안’에 ‘이’가 덧붙어 ‘굼안이’라 했던 것이 변하고 변해서 구만리가 되었고, 변한 뒤의 한자어 이름 뜻풀이로 억지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각흘고개에서 북쪽 봉수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가다가 2㎞쯤 되는 지점에서 길이 능선 위로 올라서는데 그 지점을 살펴보면 입구 부분을 제외하면 산줄기로 빙 둘러싸인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산 능선 위인데 보기 드물게 특이한 모습이다. 아, 그래서 굼 안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는 한자 혈(穴)로 표기하는 구멍이나 움을 ‘구무’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염치 백암2리를 조선시대 기록에 한자어 구미리(九美里)라 했는데 한자에 매이지 않고 생각해 보면 원래는 구미골이 아닌 구무골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송악 평촌1리 마을의 우리말 이름이 ‘다라미’이고 뒷산이 ‘월라산(月羅山)’인데, 다라미와 월라산은 사실 같은 이름이라는 결론 내린 것은 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산 이름과 산 아래 마을이나 고을 이름을 같이 쓰는 경우는 앞서 살펴본 ‘엄술’의 예처럼 꽤 많다. 재미있는 일이다.

며칠 전에 배방 모산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두리못’을 아시는 할머니 한 분을 뵈어서 무척 기뻤다.

‘두리’는 ‘둥근 것’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요즘 말로는 둥근 못인데 고유어로 쓰였다. 조선시대 여러 지리지에는 두리못을 그대로 한자로 표기한 ‘원택(원택)’으로 기록했고, 온양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 하였다.

1872년 온양군지도에도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쯤 형성된 마을로 추정되는 모산(毛山. 모산리)은 물론 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마을 이름이다. 바로 ‘두리못’ 안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못+안’이 모산으로 바뀐 것이라 추정한다.

↑↑ ▲‘원택’이 그려지고 표기된 ‘1872년 온양군지도’의 일부 <사진제공=천경석>

ⓒ 온양신문

그 추정을 다시 떠올리고 확신을 더 했던 그 날 참 기분이 좋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남들은 모를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이런 것은 어쨌든 필자의 경우다.

그래도 괜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 했던가.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 더이상 힘낼 여력조차 없으신 분들, 뭔가 해결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위안이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정말 힘드시더라도, 아주 막막하시더라도 포기하는 대신 ‘일단 유보’ 하시고 마지막 끈 하나만은 끝까지 꼭 잡고 계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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