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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의‘청계천’될 수 있을까? 하수관거 정비공사로 맑은물 흐르던 과거 찾기 노력중 창간18주년 특집 온양이 바뀐다 ② 온천천 | | | ▲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로 변한 온천천. 하수관거 정비사업 등으로 과연 과거의 그 맑고 푸르던 물 로 돌아갈 수 있을? 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이라도 추억을 안고 흘렀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 “온양도 훗날 서울처럼 거대 도시가 되면 청계천 복원처럼 온천천을 복원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오래 전에 출향해서 대전지역에 자리잡고 살다가 모처럼 고향에 돌아온 한 지기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가 고향 온양을 뜬 것은 중학교를 마친 직후였으니 어언 30년을 헤아린다.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데 이건 30년이니 세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 아닌가? 그는 온양온천역 뒷길을 걷다가 문득 바닥을 두드리며 “여름이면 이 아래 개울에서 멱을 감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며 회고에 잠겼다. 지금 나이 30대 중반 이후인 사람들은 기억하리라. 숫골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려오다가 함태연탄공장 앞에서 저쪽 너더리 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 합류해서 제법 큰 개울 티를 내며 곡교천 쪽으로 흘러가던 온천천을. 지금 그 개울은 모두 복개되어 과거의 그 기억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복개된 터 위에 난 길을 따라 과거에 이곳에 개울이 있었다는 어른들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일 뿐이다. 온천천이 발원하던 곳은 너더리와 숫골로 모두 지금의 용화동에 속한다. 용화동은 본래 온양시 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화동(上禾洞), 하화동(下禾洞) 일부와 용정동(龍井洞)을 병합하여 용정과 상화에서 한자씩 따서 용화리(龍禾里)가 되었다가 1986년 온양시 승격에 따라 용화동이 되었던 곳이다. 용화동의 대표적인 마을로는 가재골, 너더리, 숫골, 홍거리 등이 있었으니 모두 온양천이 발원하거나 지나오던 지명들이다. ‘가재골’은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어 자연히 계곡에 물이 많이 흐르는데 그 계곡에 가재가 많이 서식했다 하여 ‘가재골’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너더리’는 용화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온양군 이북면(二北面) 판교리(板橋里)라 칭하였는데 이 마을 앞 개울에 널판대기로 놓은 다리가 있었으므로 ‘널다리’라 부르다 ‘너더리’로 변하였다. ‘숫골(禾谷)’은 너더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지금의 실옥2동에서 신인동까지 깊은 골이 형성되고 숲이 많이 우거져서 ‘숲골’이라 부르다가 ‘숫골’이 되었다고 한다. ‘홍거리(홍곡(弘谷) 또는 용정리(龍井里))’는 숫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모양이 홈 같이 생겼다 해서 ‘홈거리’라 하던 것이 변하여 ‘홍거리’ 또는 홍곡이 되었다고 하고, 좁은 골이 이 지점에 와서 넓어졌다 하여 홍곡, 또는 홍골이라 부르다가 홍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어의정이 있는 마을을 ‘바라미(願)’라고도 했는데 이곳에 있는 어천수(御泉水)를 마시면 피부병, 눈병, 위장병이 치료된다 하여 병을 고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온천천은 이처럼 고유의 이름을 지난 마을에서 발원해 흘러내려왔는데. 변변챦은 개울 같아도 큰물이 지거나. 가뭄으로 마르면 일대가 상당한 조바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곳이었다. 큰물이 지면 우선 걱정스레 지켜보던 사람들이 창고말 언덕배기동네 사람들로 온양온천역 바로 뒤로 난 개울을 따라 시뻘건 흙탕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갔는데, 때로는 언덕배기의 하단이 물살에 깊게 패이면서 무너져 내려 지켜보던 어른들의 혼비백산하던 얼굴이 기억난다. 평상시에는 적당한 수량을 유지하며 흘러 이 일대 마을 아이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한몫을 톡톡히 했다. 물장구도 치고 뜰망으로 피라미나 송사리 더러는 붕어나 미꾸라지도 잡아서 어줍쟎은 매운탕을 끓여먹던 것도 소중한 기억들이다. 큰 물이 지면 위험했던 곳이 바로 지금의 굴다리 아래 개울이었다. 너더리와 숫골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이곳에서 합류하는데 물살이 제법 세어서 크게 소용돌이라도 치면 섬뜩한 기분이 들어 아이들을 가까이 보내지 않았다. 굴다리를 지난 물은 관광호텔 앞 다리를 거쳐 호텔 옆 벽을 따라 싸전골목앞으로 빠져나갔는데, 거기서부터 물이 고약해져 더이상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아이들이 없었다. 한편, 온양관광호텔과 신천탕에서 나오는 폐수구는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흘러나와 창고말이나 숫골, 혹은 시내 지역 아낙네들의 온천수 빨래터로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지금의 공구상가 옆 평양면옥 뒤로 내려갔었다. 그런데 이 빨래터 위치가 다리 밑으로 세인들의 시야에 비껴나있던 때문인지 한적한 시간에 이곳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가 다리밑에서 어슬렁대던 불한당에게 봉변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로는 일체 발길이 뚝 끊기는 일도 있었다. 온천천은 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개울이기 때문에 온갖 생활하수가 다 모여든다. 때문에 굴다리 앞까지는 아이들이 멱을 감으며 놀 정도로 맑은 물이다가도 호텔 옆 담장을 끼고돌아가면서부터 물빛이 고약해졌다. 시내지역과 지금의 온천1동 지역에서 흘러내려오던 생활하수 때문이었다. 싸전앞 강냉이 튀기던 곳(목재골목 입구)에서부터 저 아래 목화솜틀집 등이 있던 곳까지 가장 넓게 흘러가던 온천천, 이제는 거기까지 완전히 복개되어 지하로 숨고말았다. 더욱이 별도의 수로를 내어서 물을 정화시켜 곡교천으로 내보내야 할 정도로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버림받은 온천천이다. 이제 이 개울에 손과 발을 담그는 것은 정녕 꿈에도 그릴 수 없는 먼 추억속의 일일 뿐일까? <임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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