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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혁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아산에서 정착해 산다는 것

2020년 05월 30일(토) 15:30 [온양신문]

 

↑↑ ▲임윤혁(자유기고가, 아산시 더큰시정위원회 위원)

ⓒ 온양신문

살면서 참 많이 이사를 다녔던 관계로, 나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낯가림이나 적응에 관한 두려움이 거의 없는 편이다. 전국 어디를 가서 살던 조용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과, 지인들과 허물없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작은 선술집, 술 마신 다음 날 속 풀이 할 수 있는 시원한 해장국집이 근처에 있으면 이내 적응을 마친다.

거기에, 2~3시간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한 폭의 액자에 박제된 그 풍경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별반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자만이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이다.

서울이나 수원 등 대도시에서만 살던 나에게 새롭게 정착한 아산시 배방읍은 도시랄 수도, 농촌이랄 수도 없는 애매한 공간이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 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나서면 여느 대도시 못지않은 번화함으로 가득하고, 반대로 좌측으로 지하통로를 지나면 드넓은 벌판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번잡함의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구령뜰’. 처음, 그 벌판에 섰을 때, 좁은 농로에 서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360도 회전하며 바라보는 풍경은 그대로 감동의 파노라마였다. 혹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들판에 서서 홀로 감격에 겨워하는 덜떨어진 인간을 보며 조소를 날리기도 했으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도 나는 시간만 나면 구령들녘으로 나가 얽히고 꼬인 마음을 무한정 풀어놓으며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한다.

처음 이사 온 1월에는 찬바람만 쌩쌩 부는 황량한 벌판이었는데, 그래도 나는 그곳이 무작정 좋았다. 어디보다 편했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들녘에 저녁 이내가 스며들면, 하루 종일 곡교천을 오르내리던 가창오리나 기러기 따위 겨울철새들이 잠을 청하러 들녘의 ‘안품’(품 안)에 깃들곤 하는 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곤 했다.

날이 풀리며 들녘에 쑥이며 냉이며 여린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드문드문 노랗게 꽃을 피운 유채가 자태를 뽐내는 사이로, 트랙터가 굉음을 내지르며 겨우내 가라앉았던 들녘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철새 떠난 벌판에 그렇게 흙먼지 일으키며 ‘로타리’를 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구령뜰은 가지런히 줄을 맞춘 어린 모들로 ‘초록초록’하다.

이제 곧 벼들이 키를 키우고 이삭이 패이면 여름이 깊어갈 터이고 들녘의 초록도 한결 짙어질 터이다. 그리곤 노랗게 알곡을 채우며 황금물결을 이루는 가을을 지나 다시 텅 빈 겨울들판으로 돌아오리라. 그렇게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사이 나는 구령뜰의 사계를 모두 담은 채 여전히 도심 빌딩 숲을 전전하는 친구들에게 그 감동을 전하려 ‘썰’을 풀어댈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 속 액자는 계속 늘어나리라.

신정호의 사철 풍경은 주변의 어수선함과는 거리를 둔 채 줌인 될 것이고, 영인산의 단풍은 딱새나 종다리 노랫소리에 맞춰 가슴 속 깊이 박제될 터이다. 아침 안개 스멀대는 곡교천에 매운 바람 몰아치면, 천변에 줄 맞춘 은행나무 빈가지로 상고대 피어나는 모습도 드물게 볼 수 있겠지, 기대해본다.

‘외암취연(外岩炊煙)’이라 할까? 저녁밥 짓는 연기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외암리의 정취는 설화산 푸른 숲에 낀 안개(취연, 翠煙)를 배경삼아 마음 깊은 곳에 더 푸르게 각인되고, 그 옛날 맹씨의 올곧은 가르침은 키 큰 은행나무로 상기도 오롯하다.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버티고 선 공세리 성당의 가을은 신념을 따라 순교한 성인의 피처럼 붉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정취로,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수장(收藏)될 아산의 아름답고 자랑스런 풍경들⋯. 당연하게도 그런 수장품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 분명하므로, 나의 아산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 기대 속에 전개될 터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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