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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메아리 리 한 구 본보 대표이사 토사구팽과 포항제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은 육사 교수와 생도인 사제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수학을 특히 잘했던 박태준을 귀여워 하였고, 그 때부터 두 거인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은 1인당 GNP가 겨우 200달러 정도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으며 수치로는 당시 방글라데시($1,750)의 8분의 1정도쯤 되는 거지같은 나라였다. 박태준은 철강산업인 기계, 자동차, 선박, 항공기, 전자, 석유 발전소 등 중화학 공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69년 초 포항제철의 자금을 빌리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며 일본의 철강기술을 이전했다. 1970년도에 대한민국의 웅장했던 포항제철의 산업혁명이 출발하는 환희의 계기가 됐다. 허허막막한 영일만의 모래벌판에 우뚝 선 포항제철이다. 박태준은 대통령이 임명한 포항제철 건설의 지휘자였다. 포항제철은 미국과 일본을 누르고 5년 연속 세계 제1위의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큰돈, 용돈 등을 달라고 수시로 공사현장에 찾아오는 인간쓰레기들이 박태준을 몹시도 괴롭혔다고 한다. 또한 김영삼, 김대중, 대학생 데모꾼들은 사사건건 반대, 저항과 방해를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같은 사람을 유신 독재 정권의 당사자들이라고 규탄함으로 할 수 없이 박태준은 정계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이때 박태준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남기고 물러갔다. “토사구팽”이란 말의 뜻은 토끼가 죽으니까 사냥개를 대신 삶어 먹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냥꾼이 토끼가 없으니까 자기가 부리던 사냥개를 삶아 먹었다는 말이된다. 원래 이 말은 천하가 혼란으로 휘몰아 가던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말이다. ‘유방(한패공)’은 이학(理學)과 술책(術策)에 능한 ‘장량(張良)’과 백전백승하는 전략가 ‘한신(韓信)’의 조력으로 초한 상쟁에서 승리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유방’은 자신을 도와 공을 세운 장수들은 지방 사정을 고려하여 왕과 제후에 봉하였으나 영토는 분리되어 다시 전국시대로 돌아간 듯한 형세였다. ‘장량’은 ‘한신’에게 “유방은 고생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니 도망하자”고 말했다. 허나 ‘한신’은 “큰 고생을 하면서 나라를 건국했는데 호강도 못해보고 도망은 무슨 도망이냐”고 거절해 ‘장량’은 할 수 없이 혼자 가버렸다. 그후 ‘장량’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유방’은 백전백승하는 ‘한신’이 배신하면 그를 당해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때문에 항상 두려움과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이무렵 초왕으로 있던 ‘한신’이 모반한다는 헛 정보를 입수했다. 초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제일 큰 나라였다. 그러기 때문에 ‘유방’이 직접나서서 토벌할 자신이 없었다. ‘유방’은 계교를 짜서 ‘한신’을 유인한 후 체포해 버렸다. ‘한신’은 낙양으로 향하는 수레에서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고 한다. “역시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은 옳았다. 장량의 말이 옳았다. 날쌘 토끼가 없어지면 사냥개가 잡아 먹히고 높이 나는 새가 없으니 활이 버림을 받고… 전국이 멸망하면 충신이 죽임을 당한다 하였거늘 이제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내가 죽는구나”라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경제성장은,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현대와 삼성을 비롯하여 큰 대기업들은 자기 사업확장에 충실함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지만 포항제철의 그늘 밑에서 호흡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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