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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길] 고용산 진달래꽃길

2020년 04월 02일(목) 11:20 [온양신문]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 지게에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노랑나비가
지게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아지랑이 속으로 노랑나비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따라갑니다


↑↑ ▲유만근(숲해설가)

ⓒ 온양신문

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시이다. 그 때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꽃을 꽂은 할아버지 지게가 집 마당에 들어서면 손주 녀석들이 환호성을 질렀을 게다. 꽃을 건네는 할아버지 얼굴은 진달래꽃보다 더 환했을 테고.

이따금 머슴살이하는 떠꺼머리총각 지게 위에도 꽃이 꽂혀있었다. 수줍어 수줍어하며 주인아씨에게 건네지지 않았을까.

#1 ‘진달래 약탈’이라는 풍속도 있었다.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 지게에 꽂은 떠꺼머리총각이 동네 우물가를 지나간다. 순간, 모여 있던 여인들이 작당을 한다. 선발된 왈패아줌마가 슬금슬금 지게 뒤로 다가간다. 느닷없이 총각의 홑바지를 확 벗긴다. 못 보일 것을 그대로 내보인 총각은 허둥대고, 젊은 새댁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린다. 중년 아줌마들은 박장대소하며 벌떼처럼 달려들어 진달래꽃을 약탈해간다. 부끄러움의 터널을 통과한 후라야 총각이 적극적 구애자로 변신하여 장가가게 된다나?

#2 ‘진달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한식날은 다가오는데, 장가도 못간 채 죽은 동네어구의 총각 무덤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동네 어른들이 구수회의를 한다. 처녀들을 소집한다. 총각이 장가가지 못한 책임을 덮어씌우며(?) 위로해줄 것을 청한다. 외면하면 총각귀신에게 해코지 당할 수도 있단다. ‘울며 겨자 먹기’가 따로 없다. 처녀들은 진달래꽃 한 송이씩 꺾어들고 노총각의 무덤을 장식한다. 돌아서는 처녀들의 얼굴은 부끄럼 반 자책(?) 반으로 불그스레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진달래 꽃불에 볼때기 덴 년’이라며 놀린다.

# 슬픈 전설도 전해온다. 옛날 한 선녀가 큰 죄를 짓고는 인간 세상으로 유배를 당하여 내던져졌다. 와중에 다리를 다쳤다. ‘진’씨 성을 가진 나무꾼이 달려가 치료해주었다. 둘이는 부부가 되었고, 딸을 낳아 ‘달래’라고 불렀다.
달래가 예쁘게 성장했을 무렵, 선녀는 유배기간이 만료되어 눈물로 이별을 했다. 어느 날, 고을 사또가 예쁜 달래를 보고 욕심을 드러냈다가 거절당했다. 나쁜 사또는 달래를 죽여버렸다. 딸을 잃은 진씨는 딸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다 실신했다.
하늘에서는 선녀가 내려다보고 있었나보다. 갑자기 선녀의 피눈물 젖은 듯한 붉은 꽃잎이 쏟아져내려와 무덤을 덮었다. 이후부터 무덤가에는 해마다 붉은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 꽃을 ‘진달래’라고 불렀다.

대개 진달래가 피어날 때쯤이면 양식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진달래꽃을 따먹으러 산으로 간다. 그런데 하필, 진달래가 많이 있는 곳에는 문둥이가 숨어 있다가 꽃을 꺾으러 오는 아이의 간을 빼먹는단다. 아이들은 꽃에 이끌려 정신없이 가다가도 누군가가 그 말을 상기하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멀리 밭 매는 할매라도 만나면 간은 콩알만 해진다.

봄이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피어나는 꽃, 사연도 많고 추억도 많다. 동요·가요·시가(詩歌)·전설·놀이 등에 무수히 등장한다. 되살아나는 봄의 환희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애절하고 슬프고 안타깝다. 좋은 땅 기름진 땅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가. 메마른 곳이나 산성(酸性)땅에서, 척박한 바위틈에서 수줍은 듯 피어난다.

수줍어 수줍어서 다 못 타는 연분홍이
부끄러 부끄러워 바위틈에 숨어 피다
그나마 남이 볼세라 고대 지고 말더라 - 이은상 -


고용산(296m)은 영인면 성내리와 신봉리의 경계에 소재한다. 진달래 명산(名山)이다. 봄만 되면 온 산이 벌겋다. 산은 높지 않으나 평야지대에 있어 우뚝하고 사통팔달하다.

높은 산이 아니어서 접근로가 다양하고 대부분의 코스가 왕복 2km 남짓하다. 대개는 고용사, 용수사, 용화사, 백련사, 쇠재마을, 작은철봉마을(아산정 활터 앞) 입구를 많이 이용한다. 요소마다 안내표지판도 잘 설치되어 있다.

↑↑ ▲고용산 정상 오르는 길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그러나 코스마다 일정구간 비탈진 바위를 타야한다. 나름 바위를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나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큰 위험은 없다. 군데군데 널따란 바위가 있어, 전망도 좋고 쉬어가기도 좋다.

↑↑ ▲고용산 정상 오르는 길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정상 쪽으로 올라갈수록 유난히 바위와 돌이 많다. 아산 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함이 구실아치(수령의 잔심부름 하는 사람)로 하여금 돌을 깨게 하였다는 전설과, 불과 50여년 후 일어난 병자호란 때 주민들이 그 돌멩이를 이용하여 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서려있다. 정상은 널찍하여 헬리콥터 착륙 연습장으로도 쓰인다.

↑↑ ▲고용산 진달래 길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고용산의 전체적 식생은 어린 참나무와 간간이 서있는 소나무 아래 사이사이로 수많은 진달래가 살아간다. 등산코스로 많이 이용하는 용수사 뒤편 기슭에는 생강나무·올괴불나무·진달래·개암나무·쥐똥나무·물오리나무·붉나무·아까시나무·회잎나무·팥배나무·밤나무·산사나무 등이 수많은 참나무 사이사이에서 빽빽한 숲을 이룬다.

↑↑ ▲고용산 진달래 길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진달래는 어느 코스나 많지만 특히 정상 남쪽에 군락지가 있다. 최정상 주변에는 비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은 떡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고용산 정상에서 영인산 방향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정상에 서면 조망이 압권이다. 북쪽으로는 가까이 아산만과 아산호, 평택시 안중 땅이 인접해있고 멀리는 평택시가지도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안성시가 보이고, 천안의 성거산, 태조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광덕산·봉수산·설화산·배방산·태학산 등 아산의 온 산이 거의 다 보인다. 서쪽으로는 도고산과 예산·당진까지 보이는 듯하다.

↑↑ ▲고용산 정상에서 성내저수지 방향 <사진=유만근>

ⓒ 온양신문

산 아래 성내저수지의 푸른 물이 시원하고, 서남쪽 넓은 들 저편에선 영인산이 마주보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노을이 아름다워 산바람·들바람·강바람·바닷바람도 종일토록 어우러진다.

진달래꽃불이 활활 타오르는 날, 호올로 말없이 고용산 꽃길을 걸어볼 일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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