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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사에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백년을 기다려봐라. 맑을 턱이 있나?’ 쯤 되겠는데 ‘황하가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중국의 황하(黃河)강은 그 길이가 너무나도 긴데다가 그 강이 거쳐 오는 지류는 황무지가 대부분이어서 일년 열두달 365일을 늘 싯누런 황톳물이 흐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 즉 ‘아무리 오래 가도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작금 예총 아산지부가 이 고사에 딱 부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지난해부터 시작한 산하단체 내부갈등에서부터 축제 프로그램 관련 원칙없는 갈지자 행보, 정관 개편 잡음, 지부장 선출 잡음, 흔들기와 버티기, 금전문제, 패거리 싸움 등 어디선가 흔히 보던 이합집산(離合集散)-이전투구(泥田鬪狗)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난장판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판과 쌍벽을 이룰 태세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왜이리 추잡한가. 고기맛 본 절간엔 이, 벼룩까지도 남아나지 않는다더니 이 사람들이 권력맛을 본건가, 아니면 돈맛을 본건가. 행정기관에서는 문화예술도시를 지향한다면서 야외음악당이네, 예술공원이네, 미술전시관이네 주변에 기반시설을 착착 마련해주고 있는데 거기 들어가 지역민의 문화향유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당사자들은 진흙밭에서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경쟁은 아름다운 것이다. 특히 라이벌간의 경쟁은 수준향상의 원동력이다.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잘 보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다보면 스스로 발전하고 제3자들 보기에도 너무나도 아름다와 입가에 미소가 절로난다. 그런데 이런 경쟁이 아니고 상대방을 극복의 대상, 주저앉히고 밟고 넘어가야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필시 온갖 편법에 불법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작금 아산 예술계가 그렇다. 가을 길가에 보면 짙은 주황색의 꽃 루드베키아는 매우 아름다와 보인다. 그러나 일단 전성기를 넘어갔다 하면 이 꽃 만큼 추한 꽃도 보기 힘들다. 평소엔 고상한 척, 잔뜩 콧대 내세우던 예술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편을 갈라 매일 싸움박질이나 하는 것을 보면 딱 이 모양이다. 아산의 예술인들에게 요구한다. 곡교천 물은 백년 가도 맑아지지 않을 황하 강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달라.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던 설화산의 고불 정승을 비롯해 충효애(忠孝愛)의 충무공 정기까지 두루 머금은 곡교천 맑은 물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달라. 사족을 달자면 더 흐리지나 말아달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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