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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2020년 09월 10일(목) 16:04 [온양신문]

 

우리 곁에 나타난 왕버들

↑↑ ▲홍승균(온양문화원 이사)

ⓒ 온양신문

유례 없는 일이 너무 흔한 세상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부은 올해의 장맛비는 기간도 길었고, 비교적 다른 고장에 비해 호우피해가 적었던 우리 아산시가 2020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될 정도의 피해와 인명피해까지 잇따랐다.

연초부터 창궐한 코로나 19로 지친 일상에 장맛비의 습기까지 더하니 모두가 축 처진 여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불청객이 도사리는 때가 왔다. 가을이면 동글동글하게 똬리로 맺혀진 태풍의 모습이 TV에 자주 등장한다. 중이니 강이니 등급이 부여되어 한반도를 기준으로 일본이나 중국 방향으로 옮겨가는 동선에 촉각을 세운다.

피해가 컸던 ‘역대’급 태풍은 종종 뇌리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묘한 이름으로 명명되어 매번 등장하는 태풍도 ‘그 또한 지나가면 잊히기’ 마련이다.

직접 피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귀 설 수 있는 이름의 태풍, 2019년 가을 ‘링링’이라는 태풍이 아산을 심하게 할퀴었었다. 링링은 특히 아산의 오랜 노거수들을 여럿 부러뜨리고 지나가서 꽤 깊은 상처를 입힌 태풍이었다.

배방의 맹씨행단에 있는 600년 수령 은행나무의 주요 줄기가 부러졌고, 도고 오암리의 느티나무가 심하게 부서졌다. 그리고 오래도록 마을의 수호신으로 예경 받았던 신정호 건너편 점량동의 점돌 마을 당산목이 밑둥치만 남은 채 부러져서, 현재는 둥치마저 베어진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점돌 앞의 신정호와 그 주변은 약 5㎞에 달하는 순환산책로와 연꽃단지 조성으로 아산시민의 무한 사랑을 받는 명소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실내 운동의 제약에 따라 쾌적한 호숫길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이 나무는 아산시민들의 활기찬 팔짓과 발걸음을 지긋하게 내려보며 어른으로 자리했던 나무이자, 때가 되면 정성스레 차린 음식으로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신령목이었다.
수령 230여 년의 이 느티나무는 오로지 한 자리에서 세월을 삼키면서, 많은 우리의 선조들을 만났고 함께 울고 웃었던 가족이면서 의지처이고, 산 역사였다.

흔히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그 마을의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고 표현한다. 이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제를 올리며 함께 살아온 어른 나무가 사라졌으니 서운함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여기에 그런 나무가 있었노라’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전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점량동 왕버들나무 (사진제공=홍승균>

ⓒ 온양신문

그런데, 참으로 기쁜 일이 생겼다!

점돌마을 남쪽 1㎞ 남짓한 지점, 신정호 모서리 초사천 둑에 우람한 왕버들이 나타났다. 어느 날엔가 때가 이르렀다는 듯, 웅혼한 자태를 드러내며 대지로부터 기운을 뿜고 활짝 펼친 아우라에 광채가 눈부시다.

원래 이 주변에는 왕버들 몇 그루가 아름드리 밑둥치를 경쟁하며 천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형이 아름답지도 않고 잎이 헝클어져 있는 모습이다. 별다른 재목감도 못 되었으니 그저 그늘을 만드는 용도에 불과하였으나, 그 나무들에 가려서 오늘의 주인공은 그동안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해의 수해 복구 차원으로 때마침 진행된 ‘초사천 정비사업’으로 하천을 넓히고 제방과 주변을 정비하면서 이토록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나무가 우리 곁에 나투었다. 마치 오랫동안 묻혀있던 문화유산이 발굴이라도 된 듯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신정호를 뱅글뱅글 도는 아산시민에게 어느 순간 멋스럽고 신령한 기운과 함께 건강한 롤모델이 선사된 것이다.

약진하는 아산의 미래에 서광이 비치는 상서로운 일이다. 한편, 이 나무가 들판의 비바람에 견뎌왔고 땔감으로 베어지지 않은 긴 세월 끝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드러내며 자신의 노후를 아산시민에게 부탁하는 무언의 하소연인지도 모르겠다.

도시 규모가 크다고 하여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재정이 좋다고 하여 또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소 인공적인 요소와 개성 발랄한 카페가 즐비한 현재의 신정호에 대해 인근 시군 사람들로부터 부러워하는 의견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그런 곳에 당당히 서 있는, 연연한 아산의 역사성을 간직한 어른 나무는 우리 아산의 품격을 한층 일신시키는 보배로운 존재로 예우받을 만하다.

점돌 마을의 당산나무를 잃은 서운함을 일거에 달래주는 왕버들에게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질 일이다. 선조들이 함께 일구어 온 아산 땅에서 함께 웃고 미래를 꿈꾸며, 오가는 시민들의 경쾌한 발걸음과 미소에 기운 받아 두고두고 굳건한 새날을 같이 일구었으면 좋겠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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