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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개화기 인물연구 및 유물조사(4)

해평윤씨 가계와 그 족적

2008년 06월 09일(월) 13:45 [온양신문]

 

·고려말 명문귀족에서

  조선초는 하급 무인, 중기때 재상가 거쳐

·정계, 학계, 언론계 지대한 영향 미쳐

·윤치동, 아산이주 음봉 일대 세거지 형성

 

해평윤씨 집안은 고려말기 명문귀족으로 등장했다가 조선초기에는 하급 무인가문으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조선중기 선조임금 때에 해평부원군을 봉함받았던 윤두수(尹斗壽·12대)가 영의정에 이르며 다시 명문 양반가문으로 번창했다.

 

▲ 윤치호(뒤)와 어머니(왼쪽), 부인 백매려

 

그러나 17세손에 이르러 또 다시 향반(鄕班)으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19세손 윤취동(尹取東) 때에 아산으로 이주하면서 음봉면 일대가 해평윤씨 세거지(世居地)가 됐다.

 

윤취동의 2남 운웅렬과 윤영렬로 아산지역 개화기 인물의 중심인 해평윤씨 가문의 산파역을 맡았다. 해평윤씨 가문의 가계와 족적을 살펴본다.


□ 윤웅렬 가문

 

▲윤웅렬:17세(1856년) 때 무과 장원급제후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와 이듬해 별기군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됐다. 임오군란으로 잠시 임본에 피신했다가 돌아와 갑신개화파와 교류했으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갑신정변 후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었다가 1895년 김홍집내각에서 경무사로 임명됐다.

 

대한제국 수립후 법무협판, 법무대신, 군부대신을 지냈으려 한일합방후 일제에 의해 남작 지위를 받았다.

 

▲윤치호:1865년생. 본지 450호(5월 10일자) 참조

 

▲윤영선: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농학과를 졸업하고 개성에서 축산업을 경영했다. 1950년 이승만정부에서 농림부장관(제3대)을 지낸 후 고려보험 사장, 4H클럽 중앙위원회장, 서울YMCA 총무, 송도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맏사위다.

 

▲윤광선:미국 유학후 일제시기에 어장을 경영했는데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서 납북됐다. 한서 남궁억의 사위이다. 장남 윤정구는 고려원양 전무, 차남 채동규는 제2대 서울대 약대학장을 지냈다.

 

▲윤장선·기선·정선:장선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기선은 재미 피아니스트, 정선은 도미(渡美)했다.

 

▲윤봉희·용희·문희·은희·명희·보희·영희:윤치호의 장년 봉희는 김긍선과 결혼해 개성에서 살았으며 용희는 미국에서 성장후 주로 외국에서 살았다. 문희는 법학자(도쿄제대 법학부 졸업, 연희전문·이화여전 교편, 서울법대 교수로 가족법 분야의 권위자로서 학술원 회원) 정광현과 결혼, 은희는 의학박사 정봉섭과 결혼, 명희는 조인호와 결혼, 보희는 이대 음대교수로서 이대 문리대학장 현영학과 부부였으며 영희는 도미했다.

 

▲윤치왕:영국 글래스고대학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로서 세브란스 의전 교수, 세브란스병원장, 해방후 육군 의무감을 지냈다. 맏딸과 제7대 내무부장관 장석윤은 부부였고, 정재호 전 삼호그룹 총수의 장남 정규진이 맏사위였다. 둘째 사위는 심상필 홍익대 총장, 넷째 사위는 이종오 계명대 교수로 이명박정부 인수위의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이다.

 

▲윤치창:미국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정부수립후 초대 주영공사와 터키대사를 역임한 후 도미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손정도 의장의 맏딸(손진실)과 결혼했다.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장관과 재미 의사 손원태가 손아래 처남이다.


□ 윤영렬 가문

 

▲윤영렬::구한말의 무관으로 강계부사 겸 방어사, 삼남토포사, 육군참장을 지냈다. 부인 한진숙은 구한말 전라도 및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육군참장 한진창과 남매지간이다.

 

▲윤치오:일본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오랫동안 한국어교사로 일했다. 귀국후 대한제국 학부 학무국장, 중앙학교 교장, 한일합방후 중추원 부참의와 찬의를 지냈다. 한국 최초의 양장(洋裝) 여성인 김고려(한말 워싱턴 주재 대리공사 김윤정의 딸)와 결혼했다.

 

▲윤일선:한국 병리학을 선도한 의학계의 태두로서 교토제대 의학부 졸업후 세브란스 의전 병리학 교수, 서울대 창립직후 대학원장, 제6대 총장을 역임하고 원자력원장, 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장, 학술원 회장을 지냈다.

 

▲윤명선:도쿄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후 만주국 간도성 차장을 지냈다. 공주갑부 김갑순의 사위이기도 하다.

 

▲윤시선:도쿄미술학교 출신의 여류화가로 1950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남편인 민원식은 충정공 민영환의 6촌인 민영철의 3남으로 임시정부 대표인 김규식을 보좌하기도 했다. 해방후 합동통신 사장, 대한여행사 사장을 지냈으며 한국전쟁 도중 납북됐다.

 

▲윤치소:윤치호와 함께 경성신문(황성신문의 전신)을 창간해 경영했다.1910년대 대표적인 한국인 회사인 경성직뉴 사장이었으며 이 회사는 후에 인촌 김성수에 양도되어 경성방직 설립의 발판이 되었다. 1920년 이상재 등과 조선교육회를 설립해 이사가 되었고 안동교회 장로로 기욕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1924~27년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윤보선:영국 에든러버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정부수립후 초대 서울시장, 제2대 상공부장관, 3~5대 의원을 거쳐 1960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을 선도했다.

 

▲윤완구·윤완희:윤보선의 장녀 윤완구는 남홍우(경성제대 출신, 형법학계의 권위자로 고대 법대학장, 학술원 회원)와 굘혼했고, 차녀 완희는 화가로 상해임시정부 초대 법무총장인 신규식의 아들 신준호와 결혼했다.

 

▲윤상구·윤동구:윤보선의 장남 윤상구는 미국 시라큐스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다가 귀국해 (주)동서코포레이션(건축자재 판매업)을 설립했다. 국제로타리 총재,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안동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다.

 

차남 윤동구는 미국 프레베덴스에서 공부한 설치미술가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이다.

 

▲윤완선·원선·한선·택선·형선·예경·의경·계경:윤완선은 교토제대 출신으로 한말 탁지부대신 이용직의 사위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자결한 조병세의 외손주사위이다.

 

윤원선은 도쿄 농대출신으로 제2공화국에서 경기도지사를 지냈으며 대원군의 증손주사위이다. 윤한선은 경상도갑부 김기태의 사위이며, 유택선은 숙부 윤치병의 양자, 윤형선은 일본 게이오대학을 졸업했다.

 

윤예경은 이화여전 출신으로 동아일보 논선위원과 편집국장을 지낸 홍승면은 윤예경-이능섭 부부의 맏사위이다. 윤의경은 한국 세브란스의전 교장을 지낸 한국 의학계의 대부 오긍선의 아들 오진영과 결혼했다.

 

윤계경은 이화여전 출신으로 도쿄농대 출신의 이재영과 결혼했다. 이재영은 국사학계의 태우 이병두 박사의 장형인 이병묵의 아들이다.

 

▲윤치성·윤달선·윤호선:윤치성은 일본 육사 11기로 노백린(임시정부 요인), 어담(한국인 일본 육군 중장,) 등과 동기이다. 고종황제의 시종무관을 지냈고, 1924년 충남도 평의원에 당선된 바 있다. 윤달선은 승려로, 윤호선은 상공신문 사장을 지냈다.

 

▲윤치병·윤택선·윤경남:윤치병은 구한말 육군 정위를 지냈다. 윤택선은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교통부장관 비서관,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윤경남은 이화여대 출신의 번역문학가로서 샬롬노인문화원장, 최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를 맡았다.

 

▲윤치명:구한말 학부 주사를 지냈다. 아들 윤유선은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국립의료원장, 한양대 의대 학장을 지냈는데, 1950년 혁신계 정치인으로 활동한 서상일의 사위이기도 하다.

 

▲윤치영:서울 중앙고 졸업후 일보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메리칸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이때 이승만의 측근이 되어 미주동지회와 구미위원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37년 귀국해 YMCA 부총무로 활동하면서 흥업구락부와 연루돼 일경으로부터 고문과 구금을 당했다. 해방후 이승만 비서실장, 제헌의원, 초대 내무부장관,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박정희 정부 때는 서울시장과 공화당 의장을 지냈다. 


<임재룡 기자>

온양신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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