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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길] 현충사 둘레길

2019년 11월 04일(월) 15:07 [온양신문]

 

↑↑ ▲유만근(숲해설가)

ⓒ 온양신문

이순신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아산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는 학문을 했고, 22세 무렵부터는 무예를 연마하여 3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그가 자란 마을이 현충사가 소재한 백암리 마을이다. 살던 집과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 아직도 경내에 보존돼 있고. 그가 뛰놀던 방화산(芳華山)은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남아있다.

관직에 나아간 후로도 부친상을 당해 3년 상을 치르는 등 이곳에서 수차례 머문 적이 있다. 1597년 ‘백의종군’할 때 잠시 들렀다가 뜻밖에 어머니의 주검을 맞았으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통한을 삼키며 떠났고 이듬해 주검이 돼 돌아왔다.

둘레길은 백암리 마을과 현충사를 둘러싼 방화산(163m)을 돌아오는 5.1km구간이다. 길이 험하지 않아 어렵지 않다. 완주 후 시간 여유가 있다면 현충사 경내를 둘러보거나 곡교천변 은행나무길을 산책할 수도 있고, 8km쯤 떨어진 장군의 묘소를 찾아볼 수도 있다.

시작은 현충사 주차장 입구와 맞닿은 백암리마을 입구에서 한다. 그곳에서 충무교육원 방향으로 0.5km쯤 가면 교육원 정문이 나오고 문 오른쪽 길로 50m쯤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교육원 울타리를 끼고 돈다.

약간의 경사진 길을 오른 후부터 길은 소나무·참나무 외에도 은사시나무·잣나무·아까시나무·산벚나무 등이 쭉쭉 뻗어 올라 시원스러운 숲길을 이루었다. 나무가 빽빽하다보니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느라고 곧게 자랐을 것이다.

특별히 ‘귀룽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5월쯤이면 짙은 향내를 풍기며 뭉게구름 같은 흰 꽃을 무수히 피운다. 나무 이름은 ‘구룡(九龍)→귀룽’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세로로 갈라지는 수피가 아홉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도 하고, 엄청난 꽃 더미에서 아홉 마리 용이 뒤엉켜 승천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개 습기가 많은 계곡 등에서 서식하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시쳇말로 대박이다.

4월이면 산벚꽃, 5월이면 귀룽나무꽃·아까시꽃을 연이어 피우며 황홀한꽃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녹음이 짙어갈 무렵이면 귀룽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새들도 대거 몰려들 것이다. 아, 길 옆 녹슨 철조망 울타리는 좀 가릴 수만 있다면…….

↑↑ ▲현충사둘레길 <사진제공=유만근>

ⓒ 온양신문

좀 더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 ‘현충사 방화선(防火線)’길을 따라 가야한다. 산불방지를 위해 경내 주변 일정 공간의 기존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열풍차단효과가 있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600여 주나 된다고 하니 잘 자라면 이색적인 숲이 될 것 같다. 이윽고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그 옆에 작은 표지석이 있다. 3.1운동 당시 이곳에서 봉화를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백암리에는 일찍이 1901년경부터 타지에서 이주해온 한 기독교인의 활동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부설로 ‘영신학교(永新學校)’가 설립돼 마을 사람들을 계몽하고 있었다. 이 마을 출신 김복희가 이곳을 거쳐 이화학당에 수학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났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김복희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영신학교 여교사 한연순, 교회 장로 김상철 등과 함께 주민 50여명을 규합하여 3월 31일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산은 높지 않으나 온양시내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시위장소로는 그만이었을 것이다.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성터가 있고, 북쪽으로도 물한산성, 꾀꼬리성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군사적 요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멀리 설화산·배방산·황산·봉수산·태학산·망경산·광덕산·도고산 등이 보인다.

김복희는 어릴 때부터 이순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19세 소녀를 독립운동가의 길로 내딛게 했고, 교육자·여성지도자로 살아가는 삶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교회에는 민족지도자 33인 중 한분인 최성모 목사가 시무하기도 했던 곳이다. 장군의 충효정신을 설파하며 민족혼을 일깨우지 않았을까.

억새꽃이 아름다운 방화선 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현충사 경내를 두른 울타리가 나온다. 울타리 안 40여만 평의 방화산에는 소나무들로만 빼곡하다. 생태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겠으나, 거대한 소나무숲은 장군의 나라사랑 일편단심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쇄~ 하는 바람소리 웅장하고, 울창한 솔숲이 뿜어내는 공기는 청량함을 넘어 서늘하다. 큰 칼 비껴 찬 무인(武人)의 기상이 느껴진다.

↑↑ ▲현충사둘레길 <사진제공=유만근>

ⓒ 온양신문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는 말을 시퍼런 칼날 위에 새겨놓고 마음을 다잡던 장군의 기개가 장엄한 솔바람으로 휘도는 것이리라.

경내 울타리를 따라 내내 이어지는 솔향기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덧 마을 앞 차도에 이르렀다. 그 길을 따라 0.5km쯤 내려오면 언덕 위에 유서 깊은 백암교회가 보이고, 교회를 끼고 도는 둔덕 하나 넘으면 현충사 주차장이 나온다.

방화산(芳華山) 소나무숲을 음미해본다. 충신은 죽었지만 늘 푸른 꽃(芳華)이 되어 살아가는가…….

↑↑ ▲현충사둘레길 <사진제공=유만근>

ⓒ 온양신문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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