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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의 3.1운동 인명록(끝)

이인영·이일영·성낙붕·권주상

2019년 02월 07일(목) 10:11 [온양신문]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는 지난해 4월 아산지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한 학술조사용역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총론과 연구네역 요약, 주제별 연구내용 등이 수록돼 있는 데 본지는 지난해부터 총론과 요약에 이어 주제별 연구내용 중의 하나인 각 지역별 현쟝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이번부터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아산지역의 3.1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아산지역 3.1운동사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조명하는 ‘아산 3.1운동 관련 인명록’을 연재한다. <편집자註>

▲이인영(李寅永, 1889. 5.18 ~ 1957. 3.13)
아산 둔포가 본적지인 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이 돼 전개한, 양성면(陽城面)·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의 독립만세시위는 처음에는 양상면과 원곡면이 별도로 시위를 벌였다. 그는 이날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 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 경찰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해 돌아가던,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합류하게 돼 시위군중은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경찰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 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 외리여수(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융수지(隆秀知)의 집을 파괴했다.

다음은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괴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이튿날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되돌아 온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됐다.

1921년 1월 22일 경 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이일영(李鎰永, 1896.2.5.~1950.6.28)
이붕해(李鵬海), 이봉기(李鳳基), 이공삼(李公三) 등의 이명을 사용했다. 이붕해라는 이름이 본명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자는 공익(公益), 호는 송강(松崗). 신창 황산리 출생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12대손이다. 본적은 충남 천안 사직동10, 주소는 서울 성동 도선(道詵) 980-26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해 천안에서 일경에 잡혔다가, 탈출해 만주로 망명했다. 그 후 신흥무관학교를 7기로 졸업하고 청산리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활약했다.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을 피해 만주의 독립운동단체들은 중·소 국경지대인 밀산에 모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다. 이때 대한독립군단에 참가해 러시아지역 자유시로 넘어갔다. 그러나 자유시참변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3년에는 고려혁명군 조직에 참가, 동북만·밀산·호림지방에서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했다. 고려혁명군은 대한독립군단 총사령이었던 김규식과 고평·이범석 등이 이끌었다. 정세상 무장독립투쟁 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장기적인 운동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3부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이일영은 1925년 김좌진을 중심으로 하여 신민부가 조직되자 이에 참가해 경비대장으로 활약했다. 한편 1929년 7월에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가했다.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신민부와 합작해 같은 해 8월 재만한족총연합회를 결성했고 김좌진이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일영은 새로운 항일전을 도모하게 되자, 군사위원장으로 임명돼 활약했다. 이 때 부인 최문환(崔文煥)도 부녀부장으로 활동했다.

1930년 1월 김좌진이 공산당원 김봉환의 조종을 받은 박상실에 의해 순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사위원장이던 그는 치안대를 조직하고 대장이 돼 주범 김봉환을 체포·처단했다.

이일영은 1932년 2월 한족연합회 주하지방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뒤에는 해방이 될 때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후 1944년 9월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8·15해방 이후에는 광복군의 최용덕·김학규 등과 함께 중국군 및 일본군에 소속됐던 조선인 장병을 흡수해 훈련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오광선과 함께 국내지대를 따로 설치하고 참모장에 취임하여 활약했다.

귀국 후 1946년 김구가 주도하는 한국독립당의 중앙감찰위원회 사찰부장·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부수립 후에는 국군에 입대해 1949년 제주도병사구 사령관을 역임하고 방위군 옹진지단 고문단장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한 3일 후인 6월 28일 전사했다.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성낙붕(成樂朋, 1881.11.19 ~ 1919.4.5)
충청남도 아산(牙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홍성군(洪城郡)내의 횃불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밤 홍성면을 비롯해 홍북면(洪北面)·금마면(金馬面)·홍동면(洪東面)·구항면(龜項面)내의 24개 촌락에서, 일제히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때 그는 횃불시위에 놀란, 일본수비대가 시위 군중을 동서로 포위해 집중사격을 가함으로써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권주상(權周相, 1881.9.8 ~ 1957.4.27)
충남 아산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서산군 대호지면 적서리(大湖芝面 赤鼠里)에 살고 있었으므로 대호지면의 독립만세운동에 한 몫을 했다.

이해 4월 4일 대호지면 독립만세운동 거사를 위해 이곳 면장인 이인정(李寅正)을 도와 동분서주했다. 이인정은 각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보수를 명분으로 주민들을 동원하도록 통지하고 송재만(宋在萬)의 제의에 의해 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元)을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진행해 이날 장에 나가 격문 수백 매를 뿌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1천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해 장터를 누비며 천의(天宜) 장터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리고 그는 이인정의 주도에 따라 다수의 동지와 함께 천의경찰주재소에 이르러 주재소를 파괴할 목적으로 투석 등 폭력으로 시위하다가 4월 4일 일경에 피체됐다. 그는 이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소요·출판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1 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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