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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의 즐거움 '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로 행복 느끼는 정연옥 할머니

2015년 09월 16일(수) 16:38 [(주)온양신문사]

 

↑↑ 정 할머니는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배움을 미뤘었다. 까막눈에서 깨어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 온양신문

아산도서관은 지난 2012년 초등학력인정 기관으로 인정되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문해교육 1단계부터 3단계(초등 1~6학년 과정)의 교육과정을 운영 해 ‘제1회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을 실시해, 2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바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73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공부한 정연옥 (73세)할머니는 이날 교육감상과 3년 개근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26년째 투병중인 남편의 수발을 들며, 3년 동안 개근한 정연옥 할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머슴 3명을 거느리며 많은 땅에 농사를 짓던 부모님 슬하에 대학생 오빠와 언니 고등학생인 동생이 있었지만, 정연옥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집 안에서 귀하게만 자랐었다. 건강문제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게 될 줄 몰랐었다고 한다.

결혼할 나이가 된 할머니는 힘든 농사일이 싫어 절대 농사짓는 집에는 시집가지 않을 것이라고 고르고 골라 집짓는 일을 하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집 짓던 일이 힘들어진 할아버지는 그 후 시민로에 자리를 잡고 할아버지는 슈퍼마켓을, 할머니는 분식집을 30여 년 운영하며 아들, 딸을 키웠다고 한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정연옥 할머니는 “장사를 접고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심심하고 시간이 많아져 노인복지관에 다니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전동차에 태우고 갔는데 벽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글을 아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글 공부라고 써 있다고 알려주었다”며 평소 글을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할머니는 큰 결심을 하고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자음과 모음을 시작으로, 어느덧 단어에서 문장으로, 글짓기까지 익혔으며, 얼마 전에는 한자로 이름도 쓰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정연옥 할머니는 “받아쓰기 시험에서 받침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제일 진땀 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책을 볼 때도 있고, 나이가 들어 자꾸 잊어버려 읽고 또 읽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한 적도 많다”고 한다.

한자로 이름 석 자 쓰려고 공책을 몇 권 썼다며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노트도 보여준다.
얼마 전부터 중등과정으로 진학,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코리아도 영어로 쓸 줄 안다며 소녀처럼 웃는 정 할머니는 “먹고 살려고 장사에 뛰어들어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배움을 미뤘었다. 까막눈에서 깨어나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에 어린 딸이 숙제를 물어봐도 몰라서 알려주지 못했던 것이 가슴에 사무치게 아프다고 한다.

정연옥 할머니의 아들 딸은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해 장학금을 받고 학교생활을 했었고, 무사히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 잦은 병치레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는 정연옥 할머니는 늦게 시작한 공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 온양신문

한글을 깨우친 후

정연옥 할머니는 글을 배운 후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은행으로 달려갔다.
평소 은행 업무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출금을 하려면 이름 외에도 숫자 등을 적는 칸이 많아 혼자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름을 쓰고 계좌번호를 적었다. 글을 배우기 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고 주변 상점들의 간판을 읽으면서 오는 길이 그렇게 신이 났었다”고 설명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할머니는 얼마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쉽게 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종동에 있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고 한다.
거금을 들여 수강신청을 했지만 집에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학원에 간 사이에 끼니로 챙겨둔 빵과 우유를 먹고 탈이 났다.

아픈 할아버지를 혼자 남겨둔 것도 걸렸지만 학원 상담할 때 한글만 알면 누구나 쉽게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거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억울하게 학원비만 날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바람

깔끔한 성격의 정 할머니는 공부한다고 결코 집안일에 소홀하지 않다. 할아버지의 간병부터 바깥일까지 다 해내고, 할아버지의 목욕까지 손수 한다.

힘에 부치지만 남의 손을 타는 걸 할아버지가 불편해 해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직접 할 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할머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할아버지가 집에만 누워있어서 너무 속상해. 같이 손잡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다니는 게 소원이야. 다른 집 부부가 같이 다니는 거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소박하지만 가장 간절한 할머니의 바람이 가슴 찡해지는 가을날의 인터뷰였다.

↑↑ 정연옥 할머니는 한자로 이름 석 자 쓰려고 공책을 몇 권 썼다며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노트도 보여준다.

ⓒ 온양신문

↑↑ 아산도서관은 ‘제1회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을 실시해, 2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9월부터는 중등과정으로 진학한 어르신들의 수업을 하고 있다.

ⓒ 온양신문

한미영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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