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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대장간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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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허창구 장인의 유명해도 실속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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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3일(월) 10:35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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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찍 부모를 여의고 13살 때부터 굶지 않으려고 시작한 대장간 일이, 장인이 되었고,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 ⓒ 온양신문 | | 13세에 시작한 대장간 일···
낫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98번의 방송출연으로 ‘온양 탤렌트’ 별명
유명하지만 하루에 만 원 벌기도 힘들어···
98번의 신문보도와 방송매체를 통해 알려진 창구대장간의 허창구 장인이 유명세에 비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양신문이 취재에 나섰다.
20여 년 전 온양신문 보도로 데뷔(?)한 창구대장간은 20여 년 새 유명인사가 됐으나···하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허창구 장인은 부인과 아들내외, 손녀 두 명까지 모두 여섯 식구가 몇 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허창구 (71세)장인은 “16년간의 무형문화재 도전으로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고생했지만 무형문화재가 된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 유명세를 치르고 전국 각지에서 방송 출연 연락이 왔지만 전혀 수입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요즘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아마 식상할거야. 98번이나 나왔으니···하지만 온양신문에서 나왔다는 말에 거절할 수 가 없었어. 20여 년 전에 온양신문과 처음 인연이 되어 그 때부터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와서 온양의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명함 집에는 각종 방송사와 신문사 그 밖의 여러 사람이 주고 간 명함들이 수 백 장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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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언제 팔릴지도 모르는 낫을 만드는 허창구 장인은 오늘도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온천동 골목길에서 망치를 두드리며 아침을 연다. | ⓒ 온양신문 | | 유명세를 타고 달라진 점
2009년 7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탄탄대로 일 것이라는 예상은 어긋났다.
“유명세를 타고 방송 출연하고 신문에 자주 나오니,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한 건물주가 월세와 보증금을 두 배로 올렸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건물주가 떠나게 되면서 오히려 수 천 만원의 대출을 떠안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어렵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일 등 그간 살아온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허창구 장인은 여러 차례 척추 수술과 손가락 수술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대장간을 눈물겹게 지키고 있었다.
“하루 매출이 만 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저잣거리에 체험관을 만들어주겠다는 시의 약속을 믿고 6년을 기다렸다. 이제는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대장간을 지켜오던 그였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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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창구 장인은 98번의 방송출연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으나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 온양신문 | | 환갑선물로 딸에게 받은 건강검진이 그를 살려내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아침 8시면 대장간 문을 열고, 저녁까지 일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쉬는 날 없이 한 달 내내 일했다고 한다.
건강에 대해 묻자 허창구 장인은 망치질로 손가락 관절이 닳을 정도로 일해 허리와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십 년 전에는 암수술을 했다며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환갑 잔치를 한사코 거부하던 허창구 장인은 잔치를 안 하는 대신 건강검진은 꼭 해야 한다고 검진 예약을 해준 딸 덕에 1기말에서 2기로 가고 있던 암을 발견하고 곧바로 수술을 했고, 단순히 염증 치료인줄 알고 있던 그는 13일 만에 퇴원하는 행운을 얻었다.
“13일간 병원에 생각도 누워있으면서도 온통 대장간 일 뿐이었다. 단순히 기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 암수술을 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수술한 지 100일후 방문한 보험회사 직원을 통해 자신이 암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밥상을 엎으며 가족들에게 역정을 냈다” 암이라는 사실을 알면 수술을 안 하고 버틸 아버지의 성격을 알았던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염증이라고 속이고 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100일간 꽁꽁 비밀을 간직하려고 얼마나 나한테 조심했겠어? 허허허” 돌아보면 가족들의 지혜가 그를 살린 것이다.
낫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98번의 방송출연으로 다져진 그의 연출력은 프로듀서 뺨치는 실력을 보였다.
“이쪽으로 오면 사진이 잘나와. 저거 찍고. ..불꽃이 잘 나오는 각도는 이쪽”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찍어간다는 빨갛게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모습을 연출해 낸다.
대학교수들이 찾아와 자문을 구해 내놓은 책과 10여 년 전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이제는 20년이 지난 낫까지 그의 장인정신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한번 만들면 망가지지 않아서 다시 찾아오지 않는 건가? 허허. 내 낫은 북한만 빼고 전국으로 다 갔지. 낫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예전에는 허창구 낫의 모조품이 있을 정도였으니” 일찍 부모를 여의고 13살 때부터 굶지 않으려고 시작한 대장간 일이, 장인이 되었고,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외암민속마을로 들어가는 희망으로 6년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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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창구 장인은 여러 차례 척추 수술과 손가락 수술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대장간을 눈물겹게 지키고 있었다. | ⓒ 온양신문 | | 전수자가 단절될 위기
시에서 얼마 전 행정감사 때 아산의 무형문화재의 하는 일을 체험학습 수업으로 고려해보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전해주고 용기를 주고 싶었으나 허창구 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한 달에 전수자에게 20만 원 정도가 보조로 나오는데 그걸 누가 하려들겠나? 200만원 줘도 힘들어서 도망 갈텐데···”라며 궂은일이라 배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장간 체험학습에 관해서도 “장소도 협소해서 몇 명 들어오면 비좁을 테고. 학생들이 체험하기엔 위험해. 1~2년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한 번 체험으로 할 수 있겠냐?”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대접 받기는커녕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죽기 전까지 이 일도 그만 둘 수도 없어”라고 푸념하던 허창구 장인의 말이 소득 삼만 불 시대 갈길 먼 장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 팔릴지도 모르는 낫을 만드는 허창구 장인은 오늘도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온천동 골목길에서 망치를 두드리며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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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창구대장간 허창구 장인은 온천동에서 몇 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 ⓒ 온양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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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낫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허창구 장인 .그의 모조품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 ⓒ 온양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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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인이 매일 30개씩 만든다는 낫. 십 년 이상 써도 끄떡없다. | ⓒ 온양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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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6년 도전해서 무형문화재가 되었지만 하루에 만 원 벌기도 힘들다는 허창구 장인 | ⓒ 온양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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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영 기자 ionyang@hanmail.net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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