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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으로 이어지는 음봉막걸리, 비결은 ‘양심’

뒷맛이 개운한 음봉막걸리 안연홍씨

2012년 09월 20일(목) 15:23 [(주)온양신문사]

 

· 삶의 애환 담긴, 정성으로 빚는 음봉막걸리
· 안연홍씨 20년 노하우 세 아들이 이어가
· 먹는 식품이기에 양심적으로 하는 것이 비결
· 아들 안준영 ‘200년 지나도 남을 막걸리로’
· 소량 근거리 유통, 대기업 경쟁도 두렵지 않다.


어릴 때 노란주전자 들고 막걸리 심부름 다니던 추억, 배고픈 시절 맛있게 먹었던 술지게미로 알딸딸해져 돌아다니던 추억, 땀 흘리며 일하고 나서 잠깐의 휴식에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키던 그 시원함의 추억. - 우리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막걸리의 추억들이다.

↑↑ (좌측부터) 큰아들 안준영씨, 어머니 강미자씨, 아버지 안연홍씨, 셋째아들 안우영씨, 둘째아들 안도영씨

ⓒ 온양신문


- 세 아들이 이어가는 ‘음봉 막걸리’
한때는 하향의 길을 걷기도 했던 막걸리가 요즘 다시 재조명 받으면서 젊은 층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아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본 이름이며 인근 지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음봉 막걸리’는 이제 2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안연홍(63세)씨가 20여년 동안 지켜온 ‘음봉 막걸리’는 이제 세 아들 안준영(34세), 안도영(32세), 안우영(29세)씨가 이어가고 있다.

세 아들 모두가 나서서 아버지의 술 맛을 지켜나가겠다고 나선 것에 안연홍씨는 “아들들이 큰 재산이다. 요즘 내 일을 물려받아 열심히 하는 아들들을 보면 난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는 이제 이 일을 못하는 것인가 걱정 됐었는데, 가족 모두가 나서서 서로 믿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내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우리 막걸리도 지켜나가고 있다”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눈에는 대견함이 가득했다.

- 아버지 안연홍씨의 철칙 “먹는 식품이다. 항상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
원래는 과수원을 했었다는 안연홍씨. 과수원을 하면서 생긴 농약중독증으로 전업을 생각하던 중 당시 음봉 양조장이 매물로 나와 이를 인수하게 됐다. 그가 그렇게 막걸리와 인연을 맺어 온지가 24년째다.

당시 양조장이 하향 산업이었으나, 큰 기대 없이 열심히 해 보겠는 마음가짐 하나로 시작했다. 그가 처음 양조장 계약을 하고 한 일은 이름 있는 양조장을 찾아 무보수로 기초를 배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6~7개월 동안 기초를 배우고 난 후, 친척 중 양조장 기술자가 있는 분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안연홍씨에게 있어 무엇보다 철칙인 것은 “먹는 식품이기에 양심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먹는 식품이기에, 돈이 우선시 되면 안 됐다. 우선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어떤 요령을 피웠다면, 지금의 음봉 막걸리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양심적으로 열심히 만들었고, 그 노력은 맛으로 나타났으며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줬다”며 양심적으로 내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와 아들이 자신 있게 음봉 막걸리의 장점으로 꼽는 점은 ‘뒷맛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연홍씨는 “우리 막걸리는 발효를 충분히 잘 시킨다.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어떤 편법도 쓰면 안 된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을 위해 당분성분을 가미하게 되면 효소가 이를 분해하지 못해 다음날 ‘머리 아프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종종 ‘막걸리는 먹을 때는 좋은데,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 뒤가 안 좋다’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 상태에 따라 그러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발효가 덜 되거나 맛을 내기 위해 당분성분이 가미된 경우인 것이다.

- 아들 안준영씨 “막걸리는 막걸리다워야 한다”

↑↑ 음봉 막걸리

ⓒ 온양신문

젊은 세대인 안준영씨가 막걸리 산업에 뛰어들자 주변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맛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막걸리는 막걸리 다워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초와 원칙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아들답게 그 또한 막걸리의 기초이자 뿌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안준영씨는 “새로운 시도도 그 나름 가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임시적으로 붐이 일어나는 맛을 쫓아가기 보다는, 내 아버지의 노하우로 이어 온 이 맛을 지켜가고 싶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인기성 막걸리가 아닌 100년 200년이 흘러도 남을 우리 막걸리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 한 달 동안 막걸리 맛보는 꿈만
# 한 모금 들이켜 본다. ‘아... 이것도 아니다!’ 냅다 던져 버린다.
한 달 동안 매일 밤 이렇게 막걸리 맛보는 꿈을 꿨다는 안준영씨(34세)는 작년 9월 힘겨웠던 당시를 떠올린다.

20여년 음봉 양조장을 운영해 오던 아버지 안영홍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음봉 막걸리’를 지켜내려 동생들과 노력하며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이다. 잘 유지한다 싶었는데 갑자기 술 맛이 변해 버렸다.

막걸리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며 거래처에서는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술이 쉰 것이다.

“정말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었다. 아직 병중이라 신경이 예민한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도 힘들어서 아버지 앞에서는 내색 안하고 우리끼리 원인을 찾아내려고 난리가 났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안준영씨.

그는 “그동안 아버지가 일궈온 일을 자식들이 망쳐버린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다시는 그 맛을 못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힘들었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오죽하면 막걸리 맛을 보는 꿈을 한 달 동안이나 꿨을까?

결국 그렇게 한 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같이 원인을 짚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그러고 나서야 막걸리의 맛은 원래 ‘음봉 막걸리’의 맛으로 돌아왔다.

- 욕심 내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소중한 경험으로 더욱 음봉 막걸리의 맛을 지켜내야 한다는 그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 졌다.

“대학시절 아버지 술을 가져가면, 친구들이 극찬을 했었다. 또한 한 번 맛 본 사람들이 못 잊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고, 그렇게 입소문이 돌아 찾아오기도 하고 하는 우리 술이다. 우리는 우리 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술을 접하지 못해 이 좋은 술을 모른다는 것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는 안준영씨는 이제 홍보에 힘을 기울일 생각이다.

요즘 막걸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기업에서도 막걸리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에 안 준영씨는 “소비자들이 전국 어느 마트에서건 쉽게 접하는 대기업의 술이 제일 맛있는 줄 안다. 그 보다 더 훌륭한 맛을 지닌 우리 막걸 리가 있는데, 이를 소비자들이 많이 접하게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책을 모색 중이다.

아버지 안연홍씨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 사업의 확장이 더딘 편이었다. 안준영씨는 “아버지가 마음먹었다면 사업을 더 확장시켰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양조장이 있는 지역은 피하셨고, 거래처를 늘리는 일에 욕심내지 않으셨다. 몸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술을 만들었던 것 같다. 체력이 못 따라가면 건강한 술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라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에 아버지 안영홍씨가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지금이 딱 좋다. 욕심 내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지금의 고객이 평생의 고객이 된다”며 한평생 살아온 그의 신념을 아들에게 넌지시 던진다.

- 1인 다역을 맡아 온 어머니 강미자씨
옆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흐뭇하게 듣고 있는 강미자씨(58세)에 대해 아들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 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시다”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양조장 일꾼으로서, 또 마을의 일꾼까지 해내고, 일들이 한 두 가지 아닌 어머니 강미자씨의 삶이다.

“양조장 일을 하면서 보니, 술 만드는 일에 있어 어머니의 손이 안 들어간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어머니의 손을 거쳐야 한다. 남자들만 있는 집에서 가사일 만으로도 힘드실 텐데, 양조장의 모든 일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야 한다”며 안준영씨는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게다가 강미자씨는 동네부녀회장부터 음봉여성의용소방대장까지 맡고 있으니, 그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도 강미자씨는 마냥 웃으신다. ‘그렇게 좋으세요?’ 라는 질문에 “아들이 너무 듬직하고, 보고 있기만 해도 아깝다”며 아들바보 어머니의 모습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 부모님, 참 대단하신 분들
“이 일을 해 보니 부모님이 얼마나 부지런하신 분인지 새삼 다시 느꼈다”

아버지 안연홍씨가 일할 때는 부부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밥을 찌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었다. 대부분의 모든 작업들이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라 노동력 또한 대단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로는 결국 뇌경색이라는 병을 불러 왔고, 이후 안영홍씨는 아들들이 좀 편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손으로 해야 하는 부분들은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을 현대식 설비로 바꾸게 됐다.

안준영씨는 “그나마 지금 환경이 많이 나아진 것인데도 우리 세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데, 예전에 손으로 다 작업을 했던 그 때 우리 부모님들은 정말 대단한 에너지로 일을 해 오신 것이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라고 말한다.

이에 안연홍씨는 “왜 어렵지 않았겠는가? 까다로운 고객들 비유 다 맞춰가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참아냈다. 이 막걸리가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저 막걸리에게 고마울 따름이고 더욱 열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라며 감사하고 겸손하게 사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이혜진 기자  seinhj@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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