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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 지키겠다’약속하고 겨우 승락 얻어 ·다문화 가족센터 다니며 한국배워 2004년 10월 회사일로 키르키즈스탄에 나가 일 하고 있던 신기훈씨는 잘 알고 지내던 한국분의 소개로 아내 누르바예바 울칸를 만났다. 서로의 성격과 순박함에 이끌려 만남을 계속 이어가며 결혼을 결심 했지만 이들 결혼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우선 외국인이라 하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듯이 울칸씨의 부모님도 강력 반대를 했던 것이다. 이에 신기훈씨는 통역가를 대동해서 아버님을 직접 뵙고 “남자대 남자로서 따님을 지킬 테니 믿어주십시오.”라고 약속을 드렸고 이런 모습에 믿음이 생긴 울칸씨의 아버지는 허락을 하였다. 그러나 울칸씨의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했다. 후에 딸 위빈(5세)이가 태어나자 반대하던 그 마음은 많이 누그러지고 이제는 많이 좋아하신다. 그리고 다행히 신기훈씨 아버지 신상점(80)씨는 울칸씨와의 결혼을 아무 반대 없이 받아 주어 2005년 3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국가 있을 때 더 애절 2005년 11월 위빈이가 키르키즈스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탯줄이 몸에 감겨 있는 상태에 역 위치로 있어서 난산이었다고 한다.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한 상황으로 24시간 사투 끝에 위빈이가 태어났고 당시 신기훈씨는 일 때문에 한국에 있다가 위빈이가 태어난지 100여일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딸아이의 얼굴을 봤다. 하지만 이런 애틋한 만남도 잠시 키르키즈스탄에서 여권이 나와야 한국으로 같이 들어오는데 아이의 여권 발급이 늦어져서 신기훈씨 혼자만 다시 돌아와야 했었다. 그리고 한달 뒤 위빈이의 여권이 만들어 지고 그렇게 다 같이 한국에 들어왔다. 한 가족이 다 같이 살게 되기까지 13개월이나 걸렸던 것이다.
처음 콩글리시로 대화 한국에 와서 아내가 처음 음식을 했을 때는 정말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나 TV요리강좌나 요리책을 보며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이제 4~5년이 지난 지금은 김치는 물론 장 요리나 조림 요리 모두 고루고루 다 잘 한다. 처음 소개로 만났을 당시 울칸씨는 한국어를 전혀 몰랐고 둘은 짧은 영어로 대화를 했었지만 서로 비슷비슷한 실력의 영어 수준이기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통했다. 콩글리시 수준으로 대화를 했었는데, 안양 산부인과에 있을 때 미국인 부부 옆에서 이런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자니 너무 웃겼었다.
온양에 제도 갖춰져 편의 울칸씨에게는 한국어를 배울 장소가 필요했는데 아산으로 이사 와서 남편이 시청에서 운영하는 다문화가족센터에 한국어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울칸씨는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 했다. 다문화가족센터를 다니면서 울칸씨는 공부도 하고 또래 친구들도 많아져 한국 생활이 즐거워 졌다. 온양으로 이사 오기 전 안양에 있을 당시에는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았었는데 온양으로 이사 와 보니 여러 제도가 잘 갖춰줘 있어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며느리 아닌 딸처럼 여기는 시아버지 아버지 신상점씨는 “우리 며느리 참 착해요.”라는 말 한마디에 며느리 사랑을 듬뿍 응축시켜 던진다. “타국에 와서 집에 가고 싶기도 할 텐데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너무 잘 한다. | | | ▲ 키르키즈스탄의 울칸(27세, 왼쪽)씨를 아내로 맞은 신기훈(39세, 오른쪽)씨 부부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이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 가운데는 시아버지 신상점씨와 재롱 떠는 위빈(5세)이다. | 집사람이 병으로 일찍 가고 나니 아들 결혼이 늦어졌었는데 다행히 착한 며느리 만나서 너무 좋고 항상 고맙게 여긴다. 며느리라 여기지 않고 내 딸이라 여기며 지내고 있다.” 이렇게 남편과 아버님이 울칸씨를 위해 항상 배려해주고 도와준다. 얼마 전 4월 신기훈씨는 한달 정도 울칸씨를 친정 나라로 휴가를 보내줬다.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딸을 멀리 보낸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위빈이와 함께 다녀오게 했다.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예전에 13개월 떨어져 있는 것보다 이번이 더 적적 했다. 조잘조잘 거리는 위빈이가 없어서 그런지 더욱 그랬고 아버님 또한 너무 적적해 하셔서 더 있다 오라고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이제 5살 된 위빈이가 이때를 떠올리며 “아빠랑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외부사람 입방아에도 ‘끄덕없어요’ 종종 외부에서 들어오는 갈등으로 울칸씨가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울칸씨가 키르키즈스탄에 갈 때마다 주위에서는 혹여나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미덥지 않은 시선들과 아이를 가르치듯 가르치려 들고 간섭하는 주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줬다. 이럴 때마다 남편 신기훈씨는 주위 사람들을 나무란다. “내 아내라고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에 그러는 것이다.”라며 신기훈씨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이래저래 떠드는 말에 현혹 돼서 아내를 보게 되면 한 없이 의심하게 되고 그러면 부부사이는 끊임없는 갈등만 일어나기에 항상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고 한다.
부부서로 예의 갖추면 문제없어 그는 “대부분 남자들이 아내의 일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참견을 하게 되면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데, 내가 선택한 사람을 믿어주는 일이 그 갈등 해결의 길이라 생각한다. 아내가 큰 잘 못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선택했을 텐데 왜 그리 참견을 하는 가. 그냥 내버려 두면 아내가 알아서 잘 할 일을 관섭하게 되니 갈등만 커지게 되는 것이다. 갈등을 줄이는 일은 별거 아니다.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 여긴다고 말한다. 울칸씨는 “항상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발생하기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 나간다면 싸울 일이 없을 거다.”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다문화가족센터 덕으로 한국어도 늘고 친구들도 늘어 한국 생활이 즐거워졌으며, 센터에서 위빈이 한국어 능력도 항상 테스트하고 교육시켜줘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다문화가족센터 최미숙 팀장님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남겼다.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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