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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오직 그림과 글씨였어요”

동화작가 박은자가 만난 사람 - 서화가 심연(心硯) 홍승예

2020년 03월 13일(금) 13:41 [온양신문]

 

↑↑ ▲서화가 홍승예

ⓒ 온양신문

‘예술가는 배가 고프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도 예술가들은 배가 고팠고, 지금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물론 몇 명은 부와 명성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관심 밖에 있다가 꽃이 지듯 지고 만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 요즈음, 붓 한 자루를 들고 평생을 매달려온 사람은 더 배가 고프다. 더 고단하다.

여러 자치센터와 문화센터에서 중노동에 가까운 강의를 하는 홍승예 서화가(書畵家), 그녀는 코로나19로 인해 강좌가 열리지 않는 지금도 채본을 쓴다. 전국대회를 앞둔 제자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다.

서화가 홍승예, 배우기를 아직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의 그림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 나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36색 왕자파스를 사다 주셨어요. 지금도 왕자파스 36색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데요. 아버지는 제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림을 그리시는 김성용 선생님에게 데려다 주셨어요. 김성용 선생님에게 매일매일 지도를 받았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았지요. 열아홉 살이 되면서 한자는 최묵헌·인영선 선생님, 한글은 이윤숙 선생님, 문인화는 계정 민이식 선생님과 화정 김무호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전각은 혜민 스님, 탁본은 허재 고영주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은 오직 글씨와 그림이었어요. 쉬지 않고 그렸고, 그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홍승예 서화가는 국전에서 문인화 부분 입선 8회, 특선 1회를 거치면서 국전 초대작가가 됐다. 그녀의 수상경력은 화려하고 아주 많아서 지면에 다 옮길 수가 없다. 2002년도에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열리기도 했다. 지금은 충남미술대전, 남농미술대전, 안견미술대전, 울산시미술대전 등 여러 미술대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의 재능을 알아주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녀는 일하러 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맡았다. 한때 유능한 과외 선생이기도 했던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밤을 새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때가 행복하고 좋았어요. 붓을 잡으면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어요. 다른 것은 차단되고 도를 닦는 기분이었어요. 붓을 든 시간이 나만의 시간이라 더 행복했고, 좋은 선생님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 다녔지요. 그러나 아직도 작품에 만족할 수가 없어요. 한 작품을 놓고 6개월을 보낼 때가 있지만 완성하고 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요.”

그녀의 예술혼은 뜨겁고, 작품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치열하다. 언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이 경이롭다.

“대부분 새벽에 그림을 그립니다. 밤늦게 한 작품은 먹색이 좋지가 않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그리는 그림이 기가 살아 있고, 좋은 것 같아요.”

홍승예 서화가의 그림에는 좋은 작품들이 참 많다. 특히 난을 잘 치기로 유명하다. 난 뿐만 아니라 그녀가 화선지에 올려놓은 산, 바위, 부엉이, 대나무, 조롱박과 새들도 제각각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는 아낌없이 주는 선생님으로도 유명하고, 제자들은 여러 미술대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가르침도 컸지만, 오래 그리다보니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나에게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금방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들 중에는 취미로 배우다가 화가나 서예가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도 있고, 먼 곳에서 배우기를 자청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요. 나는 내가 가진 기법들을 아낌없이 줍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인데,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생명이 무한하다면 움켜쥐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아주 짧지요. 나는 43년 걸려서 국전 초대작가가 되었어요. 하지만 나의 제자는 10년 만에 추사휘호대회에서 차하를 하고, 초대작가가 되었어요. 그리고 도전과 국전에서 입상하는 제자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홍승예 서화가가 살포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연다.

“지금도 욕심이 앞서면 붓이 흔들립니다. 자꾸 덧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요. 그러나 내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붓의 흔들림이 멈춥니다. 나는 잘 그렸다는 평가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꽃을 보면 꽃 같은 마음이 되고, 소나무 그림을 보는 순간 그 기운을 받으면 좋겠어요.”

홍승예 서화가의 형제들은 2009년 아산시여성회관 개관식 때 열린 ‘서화·도예 홍씨 3남매전’으로 유명한 예술가 집안이다.

홍승예 서화가에게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 백제문화제에 참석하러 왔던 북경미술협회 회원 100명이 아산 시내에 있는 관광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가져온 80점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휘호를 하게 되자 온양문화원에서 홍승예 서화가를 다급하게 찾았다. 홍승예 서화가는 제자들을 데리고 달려갔다. 먼저 중국 서화가 두 사람이 휘호를 했다. 20호였고, 각각 호랑이와 염소를 그렸다.

홍승예 서화가는 중국 서화가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2m짜리 화선지를 펴 주세요.”
제자들은 물론 중국 서화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선지가 펴지는 순간 붓을 들고 있는 홍승예 서화가의 붓 끝에서 붉은 매화가 순식간에 피어났고, 사람들은 감탄을 넘어 탄식했다. 탄식이 끝나기도 전에 60호짜리 홍매 그림이 완성되었다. 박수가 오래오래 터져 나왔다.

홍승예 서화가는 젊은 날, 손가락에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먹을 갈았고, 밤을 새워 난을 쳤다. 화선지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늘날 그녀가 이룩한 예술적 성과는 저절로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고불 맹사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작시 ‘강호사시가’를 남겼다. 홍승예 서화가는 ‘강호사시가’를 그림과 글씨로 남겼다. 그 작품들을 보려면 배방에 있는 고불맹사성기념관으로 가면 된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 그녀가 20여 작품을 꺼냈고, 기자의 눈과 마음은 굉장한 호사를 누렸다. 그녀의 작품 어느 것도 황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산에 홍승예 서화가의 전시관과 작업실이 마련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홍승예 서화가는 그동안 모아둔 작품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고, 그 장소가 민속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수줍게 꺼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을 한껏 응원했다.

아산은 관광도시, 기업도시를 넘어서 문화와 교육이 살아있는 도시를 지향한다. 하지만 아직 문화는 갈 길이 멀다. 아산의 예술인들을 아산이 후원하지 않는다면 어찌 아산의 이름이 빛날 수 있을까? 적어도 생활고에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재료값 걱정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예술가들이 언제까지 배가 고파야 할까?

↑↑ ▲강호사시가_봄.

ⓒ 온양신문


↑↑ ▲강호사시가_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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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사시가_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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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사시가_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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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난. 70×200. 화선지/먹.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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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우도. 70×140. 화선지/먹/물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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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매. 183×183. 화선지/먹/물감. 1999. ▲친구. 79×70. 화선지/먹/물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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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롱박. 55×70. 화선지/먹/물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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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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