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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혁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2020년 07월 24일(금) 11:55 [온양신문]

 

현학과 익살에 깃든 ‘충청도의 힘’

↑↑ ▲임윤혁(자유기고가, 아산시 더큰시정위원회 위원)

ⓒ 온양신문

내게 충청도 사투리를 완전하게 접하게 해준 건 2006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였다. 아산 출신 류승완 감독과 무술감독 정두홍, 배우 이범수 등이 출연한 화려한 액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합을 맞춘 듯 능청스럽고 구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충청도 사투리의 대사에 더 매료됐다.

그중에서도 필호(이범수 분)가 청년회장을 잡아다 협박하는 장면에서 살수(김기천 분)와 나누는 대화는 압권이다.

(살수) 아예 그냥 쌧바닥을 잘라버리는 건 워띠유? 시끄러우니께 집중이 잘 안되네~
(필호) 처음부터 너무 숭악스럽잖여? 왜, 바빠서 그랴? 오늘 따블 뛰는 겨?

습기 가득한 사우나 안. 플라스틱 의자에 테이프로 칭칭 묶여 겁에 질린 사람 앞에서 칼을 가는 고문 기술자와 한껏 사나운 얼굴의 건달. 분명 분위기는 긴박하고 살벌한데,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사는 배경이 보여주는 긴장감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제각각의 특징과 정서를 담고 있는 팔도 사투리 중에서도, 충청도 사투리는 느리고 느긋하면서도 함축적이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말 속에 숨어있는 특유의 해학과 유머 코드에 방점을 찍는 이들도 있다. “아부지 돌 굴러가유~”나 “아니 그렇게 바쁘믄 어지께 오지 그랬슈~” 같은 대사는 더 이상 개그 소재 축에도 못 낀다.

그렇게 ‘느림’과 ‘눙침’과 ‘의뭉스러움’을 품고 있는 단어 중 하나가 “그류~”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 제품의 장점을 얘기해도 “그류~”, 정치인이 지지를 호소해도 “그류~”, 도대체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하다. 알고 봤더니 ‘그냥, 당신이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정도라고 한다. 자칫 난감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며 아산 친우들이 가장 먼저 알려준 사투리이다.

압축과 은유도 뛰어나다. “뭐여”는 화났을 때는 억양이 높아지면서 버럭, 기분이 좋을 때는 웃으면서, 어이없을 때는 목소리를 좀 낮추고 담담하게?. 다양한 감정을 실어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종결형 어미로 ‘겨’, ‘여’, ‘햐’ 같은 압축적 단어를 즐겨 쓴다. “뭐하는 겨?”, “기여?”, “전화 햐” 같은 표현들이다.

국어학자인 한성우 교수는 <방언정담>이란 책에서 충청도 화법을 ‘느린 화법’이 아니라 ‘접는 화법’이라고 풀이했다. 분노의 말이 종이 한 장 분량이라면 반을 접고, 칭찬이라면 반의 반을 접고, 사랑의 표현이라면 또 반을 접는다는 것이다.

1992년 가을, 오비 베어스와 빙그레 이글스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관중석에 이글스를 응원하는 충청도 남자 몇이 앉았다. 줄곧 2대0으로 끌려다니던 이글스가 9회 초 대역전 기회를 맞았다. 투아웃에 터진 안타, 그리고 볼넷. 다음 타자가 장종훈이다. ‘호무랑’ 한 방이면 끝나는 상황. 그러나 너무 높이 뜬 공은 펜스를 넘기지 못하고 잡혔다. 실망을 안긴 선수에게 욕설을 퍼부을 법도 한데, 충청도 아저씨들은 “뭐여~” 한마디 내뱉고 주섬주섬 일어선다.

“그러고도 장종훈이 니가 홈런 타자냐? 고따우로 야구 할라믄 때려 쳐라” 할 수도 있지만, “뭐여~” 한마디로 접는 게 충청도 사람이란다. 그렇다고 매양 접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알고도 당해주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는 게 또 충청도다. 그런 기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게 보령 출신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의 한 대목이다.

“이런 디서 살아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 바퀴 반이란 말여. 말 읎다고 속두 읎는 중 알어?”

아산 시민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왜 하는가 하면, 이주 6개월차 아산 새내기가 이제야 그 ‘의뭉’스러움, 에둘러 표현하는 압축과 비유의 이면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침탈에 시달렸던 아픈 역사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돌려쓰는 행간에 담긴 진의 파악이 쉽진 않다. 말 안에 담긴 유머 코드를 쉬이 ‘숭내’ 내지도 못하고 비틀지도 못한다. 달려드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손쉽게 넘겨버리는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의 묘리나, ‘먹물’들의 거들먹을 꼬집는 현학도 따라가기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수필가이자 시인인 남덕현의 말마따나 “인생의 무겁고 복잡한 의미를 머리칼 쓸어 올리듯 사소하게, 한없이 사소하게 다루”는 그들의 익살스럽고 능청스러운 말본새 속에 의연하게 깃들어 있는 ‘충청도의 힘’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기는 하다.

“야, 시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은 절대루 없는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 새끼를 친대니께? (…) 푸지게 먹으믄 새끼 쳐서 설사허구 허는 거지.”(남덕현 에세이 <충청도의 힘>)

서두를 일도, 욕심낼 일도, 단정 지을 일도 많지 않은 게 세상사임에랴.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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